박병대가 두 번이나 구속 피한 이유, 진술 전략과 재판부의 성향?

입력 2019-01-25 04:00
박병대 전 대법관이 24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이 기각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뉴시스

박병대 전 대법관이 지난달 7일에 이어 24일 새벽에도 ‘구사일생’했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법관의 두 번째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공모관계를 이루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된 상황에도 구속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이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로 법률전문가들은 박 전 대법관의 진술 태도를 꼽았다.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양 전 대법원장과 달리 사실관계를 일부 인정하되 실제 재판거래나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한 전략이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전략이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를 낮췄고 결국 기각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처럼 명백한 물증이 없어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 정도가 약한 상황”이라며 “관련자 진술과 청와대 공관 회동 참석 등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어 법원이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돼 구속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의 경우 추가로 조사할 것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굳이 구속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달 구속의 기로에서는 읍소 전략을 펼쳤다. 영장이 기각되자 이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재판장에게 “집에 노모가 있으니 구속을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를 맡았던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직업 및 주거, 가족관계를 종합해 볼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허 부장판사는 지난해부터 사법농단 의혹 관련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잇따라 기각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3600자에 이르는 기각 사유를 공개해 검찰의 반발을 샀다.

23일 영장심사를 마친 뒤에는 이례적으로 피의자 신분인 박 전 대법관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는 말을 건넸다. 점심도 거른 채 장시간 영장심사를 받고 구치소에서 대기해야 하는 박 전 대법관에게 후배 법관으로서 나름의 배려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