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대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35세의 젊은 국회의장이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임시대통령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우파 정권이 들어선 중남미 국가들은 이 선언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직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13일 만에 좌초 위기에 처했다.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23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오늘부터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서의 권력과 권한을 공식적으로 행사할 것을 맹세한다”며 “과도정부를 구성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국회의장으로 취임한 과이도는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야권 지도자다.
과이도 의장은 이런 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 “마두로 정권을 반드시 종식시키겠다”며 “전 세계가 민주주의와 더 나은 국가를 향한 우리의 저항에 격려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과이도 의장의 선언에 대해 “젊은 리더의 치열한 수싸움”이라며 “그는 베네수엘라 야권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과이도 의장 지지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나는 과이도 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며 “베네수엘라 국회가 헌법에 근거해 마두로 대통령의 통치를 불법이라고 선언했고, 따라서 대통령직은 공석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외교력과 경제력을 최대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이후 좌파 성향인 마두로 대통령과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재선에 성공하자 추가 금융제재에 들어갔고, 11월에는 금제품 거래를 금지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전날 “마두로는 독재자”라며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라. 미국은 당신들과 함께 있다”고 시위를 독려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 등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EU 28개국과 중남미 우파 정부들도 과이도 의장의 선언에 힘을 실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에서 “EU는 베네수엘라가 헌법에 따라 자유로운 선거를 담보하는 절차를 즉각 시행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들도 과이도 의장을 지지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 단교를 선언하며 초강수를 뒀다. 그는 대통령궁 연설에서 “제국주의 미국 정부와 정치·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모든 미국 외교관이 베네수엘라를 떠날 수 있도록 72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멍청한 과이도를 위한 감옥과 죄수복을 준비해뒀다”며 “반정부 시위대는 미국의 노리개”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러시아 중국 등은 마두로 정권을 지지해 베네수엘라 사태가 ‘미국 대 중국·러시아’의 진영 대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는 마두로 정권을 두둔하고 미국과 EU의 처사를 비판했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 국가들이 국제법과 내정불간섭의 원칙,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비꼬았다. 중국도 미국의 지지를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외부 세력의 베네수엘라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 내정 불간섭 원칙 아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했다. 쿠바 멕시코 볼리비아 등 중남미 좌파정부도 과이도 의장의 선언에 반대했다.
최악의 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난 10일 두 번째 임기(6년)를 시작한 마두로 대통령의 사퇴와 재선거를 촉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23일 열렸다. 반정부 및 친정부 시위대 충돌로 현지에선 최소 4명이 숨졌다. 베네수엘라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은 200만%로, 국민 30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고국을 떠났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35세 국회의장 “내가 대통령”… 벼랑끝 마두로 “美와 단교”
입력 2019-01-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