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사법부 수장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법원은 24일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사법부 71년 역사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라는 참담함과 함께 ‘앞으로’를 걱정하는 무거움이 공존했다. 법원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할지,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며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대법원장을 필두로 사법부가 조직 차원의 ‘사법농단’을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 법원이 ‘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법관은 각자 독립된 법원과 같은 존재로, 재판 청탁 시도는 있을 수 있지만 재판 거래와 같은 사법농단은 있을 수 없다는 법원의 믿음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양 전 대법원장 영장 발부에 법원이 받은 충격이 더 큰 이유다. 한 고위 법관은 “법원행정처의 과도한 행정권 남용 등이 잘못일 수 있지만 검찰이 주장한 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재판에 개입하는 등 ‘주고받는’ 거래가 범죄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이 재판거래, 법관사찰 등 의혹들의 정점에 양 전 대법원장이 있다고 지목해온 것과 달리 법원 내부에서는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실무 차원의 권한 남용은 있었을지 몰라도 대법원장 지휘 아래 사법부라는 조직 차원의 농단은 있을 수 없다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이미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지난 사법부의 과오로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현 사법부가 지난 과오와 선을 긋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지금 이 상황 자체를 보는 마음은 너무나 무겁다”면서 “그러나 한편으론 그때 벌어진 일에 더이상 발목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을 내걸며 취임했지만 사법농단 의혹 수사 과정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 내부 갈등을 더 키웠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그는 이날 대법원 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면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내부 갈등을 어떻게 수습해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사법개혁 작업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오는 28일 예정된 법관 인사가 개혁 의지를 가늠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앞서 판사의 관료화를 해결할 방안으로 법원행정처의 탈(脫)판사화 등을 제시하며 행정처 소속 판사 3분의 1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지만 앞으로 남은 재판 과정에서 더 큰 고비를 맞을 가능성도 크다. 구속 여부와 별개로 양 전 대법원장 혐의인 직권남용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동안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는 기류였다. 본격적인 법리 공방이 시작될 재판에서 각 법관이 얼마나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충격의 법원’ 추락이냐, 회생이냐… 김명수 손에 달렸다
입력 2019-01-24 18:39 수정 2019-01-24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