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정의를 물같이 흐르도록 하라

입력 2019-01-28 00:02

저는 아모스 선지자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신 건 왕의 권력 남용, 제사장들이 정치와 야합하며 전횡을 일삼는 걸 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은 세습됐으나 선지자는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지자를 둘러싼 부정과 부패도 나타났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도 선지자 학교를 운영했으나 학생들이 가난에 시달려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갈 위기를 겪었습니다. 학생들은 먹을 것이 없어 들호박을 먹었다가 집단 식중독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왕이나 권력자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받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농부이며 목자였습니다. 출생지도 베들레헴에서 10여 리 떨어진 작은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아무런 배경도 없었지요. 그런데도 아모스는 눈에 띄었습니다. 벧엘에서 활동하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고 네 고향으로 가서 그곳에서 빌어먹으라”고 말했습니다. 아마샤는 왕실과 권력의 비호 아래 살았습니다.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절 출토된 가옥의 형태를 보면 빈자와 부자의 집 차이가 무척 컸다고 합니다. 빈부 격차가 매우 심했던 것이지요. 도망간 노예를 잡아 오는 자에게 신 한 켤레를 줬습니다. 결국 사람의 가치가 신발 한 켤레와 비슷했던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제적 부유함은 이방 민족처럼 전쟁으로 얻은 게 아닙니다. 대신 율법을 준수하지 않고 거짓에 미혹돼 형제를 속인 결과입니다. 가짜 저울로 상거래를 하고 이익을 편취했으며 빈자를 압박해 일부 계층만 부를 축적했습니다. 제사장과 왕족, 귀족들이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중세 때 교회와 비슷했습니다. 불의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요즘도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정의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기도와 예배가 부와 성공과 축복을 이끈다는 설교도 선포됩니다. 수고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은 채 버는 돈도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간증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아모스 선지자가 살던 시대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형제를 속인 자가 피 묻은 손으로 기도하고 가인처럼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항의하는 뻔뻔함이 얼굴에 묻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회개 없이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건 아닌지 주변을 둘러봐야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모든 제사와 노래를 그치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더불어 “이것은 너희가 기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法)이라는 한자도 물과 연관돼 있습니다. 교회에서조차 정의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디서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겠습니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정의를 바르게 세우길 원하십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영적 공동체입니다.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잘못되고 악한 것을 뽑고 부숴야 하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즉 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배울 것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대한민국호가 침몰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침몰해 가고 있습니다. 아니 망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정의를 외치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등불을 들고 신실한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교회 공동체,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정의를 물같이 흐르도록 합시다.

이상웅 목사(청송 진보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