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새교회 지하 1층 식당. 흰머리가 보이는 중년 남녀와 어린이들이 꽃다발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꽃향기가 진동했다. 교인들은 점심을 먹자마자 손수 만든 다양한 꽃다발을 박스에 정성스레 담았다. 이 교회 정병우(64) 담임목사는 “올해로 20년째”라며 “이제 교회전통이 됐다. 매년 1~2월 꽃다발을 만들어 인근 학교 졸업식에서 판매한다. 봉사하는 교인이름을 따 가칭 ‘은혜꽃집’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새교회가 꽃을 팔게 된 계기는 어려운 교회재정 형편 때문이었다. 목회자의 사례비를 제대로 드릴 수 없었고, 은행대출 이자도 갚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선교기금을 마련해 불우이웃을 돕겠다는 뚜렷한 교회비전을 세워가고 싶었다.
재정부장 김진태(60·자영업) 장로는 “은퇴하신 김석규 원로목사의 아내 진정자 사모가 2000년 긴급 의견을 냈고 이후 졸업시즌이면 꽃다발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교회자립에 큰 보탬이 됐다. 무엇보다 교인들이 하나 되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꽃판매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꽃을 싸게 구입하는 게 그나마 쉬운 일이었다. 한 달 전부터 기초작업을 했다. 리본과 말린 꽃 만들기, 초콜릿과 사탕 포장, 비누꽃 만들기 등을 병행했다. 포장지를 자르고 또 잘랐다. 꽃이 추위에 얼지 않도록 일일이 비닐 포장도 해야 했다.
꽃다발을 만드는 교인들은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판매 자리 맡는 것을 꼽았다. 자리를 맡으려면 새벽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졸업식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추위에 떨며 몇 시간을 기다렸다.
판매 실적이 부진할 때도 있었다. 다양한 먹거리와 인형 등이 꽃다발을 대신해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요즘 졸업생들은 꽃다발 대신 실질적으로 필요한 용돈이나 스마트폰 등을 선호한다.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꽃시장이다.
“교회가 꽃을 판다”고 비아냥거리는 상인도 있었다. 자신들의 꽃판매 및 수익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장로는 “교회가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꽃을 판매한다고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귀띔했다.
꽃판매를 탐탁잖게 여기는 목회자도 있었다. 하지만 김명하(70) 장로 등 교인들은 꽃을 함께 만들고 판매하며 ‘똘똘’ 뭉쳤다.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꽃을 팔았고 힘을 모았더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은혜로운 간증도 잇따랐다.
문재옥(58·주부) 권사는 건강을 회복했다. 문 권사는 인근 학교 40여곳의 졸업식 일정을 챙기는 일을 맡고 있다.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봉사해 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예배부장 김영철(65·농업) 장로는 3대가 믿는 크리스천 집안이 됐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1시간 넘게 걸려 이 교회에 출석한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봉사하니 마음이 기쁘다. 하나님이 양육 간에 건강함을 선물로 주셨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명순례(69·주부) 권사는 “처음엔 거리에서 꽃을 파는 게 창피했다. 하지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니 금세 창피함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70대 후반의 최순자 권사는 경기도 부천에서 3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또 다른 70대 이정자 권사도 꽃 파는 교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다.
60대 직장인 최봉임 권사는 아예 2~3일 휴가를 내 교회에서 숙식하며 봉사한다. 김은경(36) 집사도 반차를 내 꽃판매를 하고 출근했다가 퇴근 후 다시 교회에서 꽃 만들기를 돕고 있다. 김은혜(38) 집사도 꽃다발을 만든 데 열정과 헌신을 보이고 있다.
꽃판매가 늘자 교회는 자립을 선언했다. 재정적인 이유로 중단했던 지역섬김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 교회를 헌당했다. 2015년 구제부를 따로 설치했고 꽃판매 수익금 전액을 빈민구호에 사용한다.
입원비나 수술비가 부족한 이들을 돕고 있다. 불우이웃에 생활비를 지급한다. 또 인근 경로당 두 곳에 과일이나 떡 반찬 식사 격려금 등을 제공한다. 지역아동센터엔 에어컨을 설치해 줬다. 아프리카 케냐와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필리핀 선교사들에게 선교헌금도 보낸다. 교인들이 운영하는 ‘은혜꽃집’ 향기가 지역사회는 물론 저 멀리 선교현장에까지 퍼져가고 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나눔 향기 은은한 ‘은혜꽃집’ 아시나요
입력 2019-01-25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