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외과 기피는 교수 권위주의 때문

입력 2019-01-24 04:02
의대생 A씨는 외과를 지망했던 동기들이 실습을 다녀온 뒤 “못 하겠다”며 그만두는 경우를 종종 봤다. 하지만 외과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은 왜 외과에 안 오냐. 힘든 건 싫어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려고 하는 건 의사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고 한마디씩 했다. A씨는 “학생들이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교수들이 권위주의적이고, 그러한 교수에게 배우면 우리의 정신건강이 온전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고 꼬집었다.

의대생 절반이 언어폭력에 시달린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가 나왔다. 성희롱을 겪었다는 여대생도 10명 중 3명 이상 꼴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1763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 심층면접 등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2017년 부산대병원에서 전공의가 교수에게 폭행 당한 사건을 계기로 이번 조사가 이뤄졌다. 폭력, 차별, 강요 등 의대 내 인권침해는 유형도 다양했다.

피해가 가장 많은 인권침해 유형은 실습·수업 외 동아리모임이나 회식에 참석하도록 압박하는 ‘모임 강요’(59.5%)였다. 모임, 회식자리에선 술 강요(46.7%), 춤·노래 강요(31.4%) 등이 이뤄졌다.

B씨가 다니는 의대에서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 못 해서 찍히면 그 학번 전체가 ‘타깃’이 된다고 했다. B씨 동기 남학생들도 같은 이유로 선배들에게 불려갔다. B씨는 “선배들이 한 명당 7병꼴로 1시간 이내 술을 마시게 했다”며 “일부는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했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C씨는 “우리 대학엔 ‘담임반 제도’가 있는데, 병원에 있는 담임반 교수가 술자리에 호출하는 날은 ‘죽으러 가는 거다’며 간다”고 말했다.

차별 피해도 많았다. 의학 교육 과정에서 성별 때문에 차별을 당했다는 학생은 56.6%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72.8%로 남학생(44.5%)보다 1.6배 많았다. D씨는 “인기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 정신과까지도 심지어 남자들만 뽑는다”며 “여학생들은 임신을 하고 애를 낳으면 중간에 채울 사람이 없다는 이유를 댄다”고 전했다.

욕설·인격모독 등 언어폭력은 조사대상의 절반가량(49.5%)이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신체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도 6.8%에 달했다.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 학업·성적을 빌미로 한 협박도 있었다. ‘유급을 시키겠다’ ‘특정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을 받거나 논문·보고서를 갈취 당한 경험을 한 학생은 26.0%이었다. 언어적 성희롱(25.2%), 신체적 성희롱(11.1%) 등 성폭력 피해도 있었다.

대부분의 인권침해 사례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 경험 학생의 3.7%만이 피해사례를 대학·병원에 신고했다. 인권위는 “졸업 후에도 선배들이 있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의대 내 수직적인 문화를 견뎌내야 하는 구조가 된다”며 “관련법이 의대생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