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빚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통화정책 정상화를 모색하던 각국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자 슬그머니 ‘완화’로 다시 손을 뻗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심각한 재정적자 상황에서 경기 부양은커녕 되레 부채 증가세만 확대시킬 수 있다. 저금리 시대에 덩치를 키운 빚이 본격적으로 역습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기업부채가, 한국은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으로 지목된다.
23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53.1%로 미국(248.9%)을 넘어섰다. 특히 중국의 기업부채 규모는 위험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57.1%로 미국(72.6%)이나 일본(101.6%) 유로존(106.5%)을 웃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2%로 낮춰 잡았다. 국제금융센터 이치훈 연구원은 “대외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경우 중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높은 부채비율은 중국 정부가 연초부터 꺼내든 ‘돈 풀기 카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짙게 만든다. GDP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보다는 현재 6%대 성장률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09년 4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은 경제성장률 회복에 일시적 도움을 줬지만 부채라는 부담을 남겼다”며 “현재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도 급속하게 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불안요소는 가계부채다. 최근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6.9%에 이른다. 조사대상 28개국 가운데 호주 캐나다에 이어 3위다. 지난 5년간 가계부채 증가율(약 15%)은 중국(18.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가계부채 증가를 견인한 부동산 관련 부채의 부실 위험성도 높다. 정부의 강한 규제와 부동산 거래침체가 맞물리며 가격 하락은 가속화되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2채 이상 주택에 투자한 가계(다주택자)는 총 87만3000명이다. 이들은 전세보증금을 포함해 400조원 이상의 부채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세가격 하락과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 강화 등으로 차주의 채무 상환불이행 위험성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부채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금융시장은 24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의 동결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연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기대 이상으로 늦춰지면 한은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한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현재 2.7%에서 2.6%로 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韓·中 경제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계·기업 ‘부채’
입력 2019-01-2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