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짜릿한 손맛에 반해… 강원 인구의 3배, 겨울축제 찾았다

입력 2019-01-25 04:03
강원도 겨울축제가 여가문화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도 실내 놀이공원과 스키장 외엔 갈 곳이 없었던 예전과 달리 전국 방방곡곡의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겨울만 되면 강원도를 찾고 있는 것이다. 동적인 체험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만한 거리를 다양하게 갖춘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평가다. 화천산천어축제 개막 이튿날이었던 지난 7일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낚시로 잡은 산천어를 들어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김지훈 기자
겨울이 되면 강원도 곳곳에선 각양각색의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화려한 색깔의 텐트가 줄지어 늘어선 평창송어축제장(위쪽 사진), 얼음판 위를 가득 채운 화천산천어축제 관람객들. 권현구 기자
홍천강 꽁꽁축제장에서 송어낚시를 하고 있는 부자. 김지훈 기자
눈으로 만든 조각상 사이를 걷고 있는 대관령눈꽃축제 관람객들. 권현구 기자
대관령눈꽃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국제알몸마라톤대회. 김지훈 기자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이들이 무릎 높이의 물을 첨벙거리며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닌다. 물속에선 팔뚝만 한 물고기가 사람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다. 마침내 산천어 한 마리를 움켜쥔 남성은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지른다. 바로 옆 사람은 잡은 산천어를 들고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린다. 한여름 축제장의 모습이 아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물 속에 온몸을 담그고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화천산천어축제장의 모습이다. 과연 누가 그들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 속에 뛰어들게 했을까. 자신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말이다.

도시민들이 강원도 겨울축제의 매력 속에 흠뻑 취해버렸다. 23일 강원도에 따르면 화천산천어축제와 평창송어축제를 찾은 관광객은 이날 현재 각각 153만명과 60만명을 넘었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홍천강꽁꽁축제에는 역대 최다인 65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최근 개막된 대관령눈꽃축제와 태백산눈축제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26일 개막하는 인제빙어축제도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평창군 최용민 축제지원 담당자는 “지난해 평창올림픽을 위해 개통한 KTX가 평창송어축제의 관광객을 늘리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살아있는 고기를 직접 잡는 역동적인 체험이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들 축제를 찾은 관광객은 총 442만명이었다. 강원도 인구 154만명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도 겨울축제를 찾은 관광객의 숫자는 2013년 351만명, 2014년 373만명, 2015년 332만명, 2016년 265만명, 2017년 342만명으로 집계됐다. 2015~2016년은 이상 고온으로 얼음이 얼지 않아 축제가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돼 관광객 수가 다소 주춤했지만 2017년 정상 궤도에 진입한 이후 지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강원도 겨울축제의 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제군은 당시 소양강 상류 드넓은 얼음벌판에서 빙어와 얼음을 주제로 빙어축제를 열어 겨울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3년 처음 시작된 화천산천어축제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평창송어축제와 홍천강꽁꽁축제 등 대규모 겨울축제가 잇따라 성장하는 데 기폭제가 됐다.

많은 이들이 이처럼 겨울축제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원도 겨울축제의 주인공은 ‘물고기’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얼음판 위에 같이 올라가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잡는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다. 물고기를 낚으며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손맛과 잡은 고기를 회나 구이로 먹는 입맛,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 등 오감(五感)을 만족할 수 있는 것 또한 일반적인 축제와 차별화된다.

미국 AP통신과 영국 BBC 방송은 최근 화천산천어 축제에서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은 관광객을 촬영한 사진을 지구촌 화제의 사진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강원도 겨울축제가 다른 축제와 비교해 특별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눈·얼음 썰매처럼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풍성해 가족 단위 관광객 모두가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축제장에선 얼음낚시를 비롯해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집라인, 얼음 자전거, 스노래프팅 등 동적인 체험과 함께 눈·얼음 조각 전시 관람, 다양한 공연, 외줄 타기 등 정적인 행사도 아우르고 있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구이나 회, 튀김, 매운탕 등으로 즐길 수 있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윤희정 교수는 “최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 자녀의 겨울방학과 축제 일정이 맞아떨어지면서 겨울축제를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뿐 아니라 국외 언론에 겨울축제가 많이 노출되면서 겨울이 없는 동남아시아 관광객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윤 교수는 “강원도 겨울축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화천에 공급하는 산천어만 180t… 전국 19개 양식장에 ‘효자’

강원도의 겨울축제는 농촌 지역을 먹여 살리는 일등공신이다. 겨울철 일거리가 없는 농촌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에 많은 자금이 순환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017년 발표한 ‘강원지역 겨울 축제의 성과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강원지역 겨울축제 방문객의 소비 유발액은 2146억원, 이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는 3806억원, 고용창출효과는 3670명으로 추산됐다. 축제로 인한 경제의 파급효과가 커지면서 겨울축제가 열리는 화천과 평창 등지에서는 ‘축제 하나로 한 해를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화천군 관계자는 “축제 초기에는 축제장에 입점한 1개 상점이 한 달도 채 안 돼 1억원 이상을 벌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축제에서 입장권 일부를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사랑상품권이나 농산물 교환권으로 나눠주는 것도 지역에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천과 평창, 인제 등의 축제장에선 축제장 프로그램 이용권의 일부를 지역상품권이나 농특산물교환권으로 돌려주고 있다. 화천산천어축제는 지난해 23일의 축제 기간 동안 15억원에 달하는 상품권과 교환권이 유통됐다. 농특산물교환권은 축제장 내 판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고 지역상품권은 지역 주유소와 편의점, 시장 등 어디에서나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관광객은 반값에 축제를 즐길 수 있고, 상인과 농민들은 농한기에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축제에서는 송어와 산천어 등 양식어종을 사용해 양식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매년 산천어축제에 사용되는 산천어는 180t에 이른다. 화천지역 양식장 9곳을 비롯해 양양·영월·춘천 등 강원도와 경북 울진·봉화 등의 19개 양식장에서 자란 물고기들이다. 화천군은 축제를 마친 뒤 다음 해에 사용할 산천어 물량을 양식업계와 계약한다.

평창송어축제는 축제 기간 관내 11개 송어 양식장에서 사육한 송어 75t가량을 사용한다. 홍천강꽁꽁축제는 인삼 액기스를 먹여 키운 송어 40t을 낚시터에 풀어놓았다. 6년근 홍천인삼 원액을 섞어 만든 사료를 홍천군이 개발해 송어를 양식하는 주민들에게 보급했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축제는 주민들이 주도해야 성공할 수 있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고스란히 지역이 누릴 수 있다”며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화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