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천국 백성의 ‘말모이’를 만드는 일

입력 2019-01-24 00:00

“또 한번 보고 싶어요.” 영화 ‘말모이’를 본 후 승강기 앞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제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듣고 이유를 물어보니 “역사가 보여서요”라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역사가 보여서…’라는 그의 대답은 돌아오는 내내 영화의 잔상과 함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장면이 됐다. 한편으로는 어린 친구지만 영화에서 역사를 보는 안목이 대견해서였고, 한편으로는 우리 공동체와 교회의 말과 언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역사를 보고 있을지, 어떤 감동을 맛보고 있을지 문득 아뜩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의미로, 말에 담긴 뜻을 모아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말하는데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최초 우리말 사전에 관한 내용이다. 영화 대사에 “말모이가 뭐야? 말모이인지, 소모이인지…”하며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내용이 있는데, 오히려 내게는 그 ‘먹이’로서의 ‘모이’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새 모이, 소 모이, 닭 모이는 분명 짐승들의 먹거리를 말할 텐데 여기서 ‘말모이’는 사람들의 먹거리를 말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모은 것(말모이)이, 곧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할 양식(말모이)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있고 말이 모인 곳에 뜻이 있으며 곧 독립의 길이 있다”는 영화 대사를 조금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곳에 천국의 언어가 있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고 하나님나라 건설의 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바로 ‘말모이’의 작업, ‘천국모이’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말은 곧 정신이기에 성경 언어, 천국 백성인 우리가 쓰는 독특한 하나님나라 사투리가 이 땅에 세워질 하나님나라의 실체를 잘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첫 사람 아담이 처음에 한 일도 ‘말모이’ 작업과 비슷하다. 하나님이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모든 생물의 이름과 뜻을 짓는 일이 바로 아담의 처음 일이었다.(창 2:19) 하나님의 숨을 몸속 깊이 들이마신 사람이 다시 밖으로 내뱉는 그 말이야말로 각종 생물로 하여금 자기 이유를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됐다. 아담의 말모이 작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하나하나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오늘 우리의 말모이 작업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후려치기’와 ‘휘갈기기’ 그리고 ‘엉덩이’와 ‘궁둥이’의 미묘한 차이가 무엇인지 여러 정황 속에서 설명하는 그들의 열심을 보며 오늘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에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이 이 세계의 언어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정황 속에서 어떤 열정으로 전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민들레’의 어원이 문 주위에 흔하게 피어 있어서 본래 ‘문들레’라고 했는데 그 말이 민들레가 됐다는 영화 속 설명을 들으며 예컨대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어원을 얼마나 깊이 있게 파고들어 깨닫고 있으며 또 알리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천국 백성이 깨달아 알게 된 아름다운 천국 언어들을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같이 알 수 있도록 더 많이 모으고 알려주는 일에 힘을 모을 때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고 되뇌는 이 영화의 명대사처럼 우리에게도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하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세대의 성경 언어 사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역사가 보여서요”라고 답한 극장에서의 어린 친구와 같이 우리 교회 친구들도 우리가 작업한 성경의 ‘말모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나라 역사를 보고 가슴이 뛰었으면 좋겠다. 상기된 얼굴로 그 역사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 주위 어디에나 피어있는 민들레처럼 천국의 ‘말모이’들이 세미한 바람을 타고 하나님나라 홀씨로 날아다니는 장면을 당신과 같이 보고 싶다.

김주련 대표(성서유니온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