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무인로봇 URI-R, 수심 500~2500m서 파고 뚫고 조인다
입력 2019-01-26 04:05
관리자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수중건설로봇 ‘URI-R’이 육중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앞쪽에 장착된 길쭉한 컨베이어벨트 모양의 트렌치 커터(Trench Cutter)가 점점 빠르게 돌아갔다. 이 회전력을 이용해 단단한 해저 지반에 도랑을 낸다. 언뜻 보기엔 궤도 바퀴가 달린 모습이 굴착기를 닮았다. 그런데 ‘URI-R’의 활동 무대는 수심 500m의 바닷속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수중건설로봇사업단은 지난 17일 경북 포항의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수중로봇 연구·개발(R&D) 사업 성과보고회’를 열었다. ‘URI-R’은 국내에서 개발된 수중건설로봇 3종 가운데 가장 최근에 탄생한 막내다. 길이 13.2m, 폭 3.5m, 높이 3.4m로 무게는 35t에 이른다. 굴착기처럼 트렌치 커터를 ‘다목적 암(Arm)’으로 바꿔 달아 암반 파쇄, 해저케이블·파이프라인 매설 등도 할 수 있다.
‘URI-R’의 형들인 ‘URI-L’과 ‘URI-T’는 더 깊은 바닷속에서 작업할 수 있다. 최대 2500m까지 잠수한다. 궤도 바퀴로 해저 바닥에 붙어 이동하는 ‘URI-R’과 달리 이들은 프로펠러를 이용해 수중에서 수평·수직으로 이동한다. 경(輕)작업용 수중건설로봇인 URI-L은 수중 구조물 용접·절단·청소 등에 투입된다. ‘URI-T’는 600마력에 달하는 워터젯으로 물을 분사해 최대 깊이 3m의 도랑을 팔 수 있다. 매설된 해저케이블 탐지 장비와 절삭·집게 장비도 갖추고 있다.
‘수중건설로봇 3형제’ 개발은 2013년 첫발을 뗐다. 그동안 예산 814억8000만원이 투입됐고, 지난해 9~10월 동해의 수심 500m 해역에서 실증실험도 성공리에 마쳤다.
수중건설로봇시장은 미국 영국처럼 석유·가스채취산업이 발전한 나라의 독과점시장이다. 2017년 2조원 규모였던 시장은 2022년 2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여기에 ‘도전장’을 던졌다. 2030년까지 시장점유율 5%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해수부는 ‘URI 3형제’가 상용화되면 국내 해양개발 비용도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해양개발에선 해외의 수중건설로봇을 임대해야 했다. 하루 임대료만 1500만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바닷속에 투입되는 기간뿐만 아니라 장비를 옮기는데 드는 시간도 임대료 계산에 포함된다.
해수부 오행록 해양개발과장은 25일 “URI 시리즈의 경우 해외 장비보다 20~30% 싼 가격으로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외장비 수입대체에 따른 파급효과는 연간 10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장인성 수중건설로봇사업단장은 “실제 수중건설에 투입되려면 현장적용 실적(Track record)을 확보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싸다고 해도 실적이 없는 장비를 해양개발업체에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적을 쌓지 못하면 혈세를 들여 개발한 수중건설로봇이 사장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해수부와 수중건설로봇사업단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360억원을 들여 ‘실증 및 확산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3000t급 선박을 시험평가선으로 개조해 실증시험을 도울 예정이다. 전남과 제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상풍력발전소 설치사업에 URI 시리즈를 투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수중건설로봇 운용은 기술을 이전받은 중소기업들이 맡는다. 3개의 중소기업이 URI 시리즈를 나눠 운용한다. URI-L 기술을 이전받은 레드원테크놀러지의 문용선 기술이사는 “기존에 보유한 기술과 융합해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항=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