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곳곳에 ‘보이지 않는 손혜원’

입력 2019-01-22 19:05 수정 2019-01-22 23:32
손혜원 의원이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한지 학술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손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지진흥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챙겨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뉴시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손피아’(손혜원+마피아)의 그림자가 문화계에 드리워져 있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처음으로 열린 나전칠기 전시는 손혜원 의원 인맥이 주최했고, 국회에서 증액을 요구하는 사안마다 정부 예산에 탁탁 반영됐다. 심지어 특정 공예 장인, 학예사를 국정감사장에서 콕 집어 거론하는 등 민간인 시절 관여한 사업과 인맥을 과도하게 챙겼다. 그 영향력이 ‘손피아’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열거해보자. 지난해 8~9월 청와대 사랑채 전시실에선 ‘나전과 옻칠-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전이 열렸다. 사단법인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회장 이칠룡) 등이 주관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최한 전시다. 이 회장은 “민간에서는 사랑채에서 전시를 할 수 없어 KCDF에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공예 진흥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니 당연히 해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KCDF의 반응은 다르다. 참여 과정에 손 의원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정황이 포착된다. KCDF 관계자는 22일 손 의원의 영향력과 관련,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이니 아무래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행사를 주관한 이 회장은 나전칠기 장인 황모씨, 오모씨 등을 손 의원에게 소개하며 오랫동안 손 의원과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특히 손 의원은 국회에서 “왜 국내에서 실력을 알아주지 않느냐”며 오씨를 챙겼다.

국회 입성 전에 관여했던 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 요구도 논란이다. 손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교문위에서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 중 열린 한국공예전 ‘한국공예의 법고창신(法古創新)’과 관련해 예산 증액을 요구했고, 관철했다. 의원 배지를 달기 전 기획해 2013, 2014년 예술감독을 맡았던 전시였다.

앞서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무형문화재 예산을 늘려 달라. 한지진흥원, 나전칠기진흥원 등을 만들어야 하는데 장관께서 꼭 챙겨 달라”고 요구했다. 한지는 손 의원이 국회에 입성하며 새롭게 관심을 가진 분야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를 동원해 자신이 대표로 있는 국회 문광산업연구포럼에서 지난해 12월 한지 학술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는 ‘복심’으로 통하는 조희숙 보좌관의 ‘역할’이 거론된다. 조 보좌관의 딸은 손 의원 조카와 함께 전남 목포 창성장의 공동명의자 중 한 명이다. 조 보좌관은 과거 전북 전주시에서 근무하며 한지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한지 사업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문체부 한지 관련 예산은 2017년, 2018년 각각 4억5000만원에서 2019년엔 정부안으로 11억원을 요청해 편성됐다. 배 이상 증액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작품 구매에 압력을 행사하고 인사 청탁을 했다는 뒷말도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인사 청탁 보도와 관련해 손 의원이 지난해 6월 찾아와 민속박물관의 특정 학예사의 전문성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추천’했다고 해명했다. ‘추천’은 지위에 따라 압박이 될 수 있다.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이왕이면 협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느냐”면서 “국회의원이 특정인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급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여의도 문법’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손 의원의 행동을 두고 전통문화를 살리려는 ‘선의’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공인과 사인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보가 무리수를 낳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회 입성 당시 그의 기질을 잘 아는 모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문재인정부가 화를 입으면 손 의원 때문일 것이다.” 예측이 현실로 됐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