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일을 맞아 미국에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확보 방침을 옹호하며 킹 목사의 어록을 언급하면서 생겨난 공방전이다. 급기야 킹 목사의 아들까지 나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했다.
시사지 ‘디 애틀랜틱’은 21일(현지시간) 킹 목사의 아들인 마틴 루서 킹 3세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킹 3세는 아버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언급하며 “킹 주니어는 다리를 놓는 사람(a bridge builder)이었지, 장벽을 세우는 사람(a wall builder)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라임에 신경 쓴 발언이었다.
킹 3세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도 역이용했다. 그는 “아버지는 증오가 아닌 사랑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킹 목사 생일인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한다. 킹 목사는 1968년 암살당하기까지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공민권 운동을 이끌었다. 몽고메리에서 흑인차별 버스 보이콧 투쟁을 이끌었고 미국 남부 그리스도교지도회의(SCLC)를 결성했다. 평화에 힘쓴 공로로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 민주당 유력주자들은 일제히 킹 목사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은 “우리는 킹 목사 꿈의 계승자이며 정의와 평등을 위한 싸움에 선 군인들”이라고 말했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뉴욕주 상원의원도 “증오와 어둠을 불러일으킨 대통령과 싸움에서 영혼의 칼을 휘두르겠다”고 말했다. 2년 전 대선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도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를 원한다”고 외쳤다.
앞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분리장벽 예산 확보 방침을 설명하면서 킹 목사의 명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의 문구를 인용했다. 펜스 부통령은 “내가 좋아하는 킹 목사의 문구 중 하나가 ‘지금이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라는 것”이라며 “이는 입법 절차를 통해 미국이 변화하고 더 완벽한 연방이 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가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 발언은 즉각 역풍을 불러와 “킹 목사의 유산에 대한 모욕”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킹 목사 기념일에 골프를 쳤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올해엔 펜스 부통령과 함께 워싱턴DC의 킹 목사 기념비를 방문했지만 머문 시간은 2분여에 그쳤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킹 목사는 美 국경장벽을 어떻게 볼까
입력 2019-01-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