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맥 끊는 ‘뜬금 PPL’ 어이할꼬

입력 2019-01-22 19:25
과도하거나 극에 녹아들지 않은 간접광고로 눈총을 받은 드라마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SKY 캐슬’(JTBC),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남자친구’(이상 tvN). 각 방송사 화면 캡처

“샌드위치와 이온 음료의 추억 아닌가요.”

지난 20일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의 마지막 회가 끝나자 온라인에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극의 주 소재였던 AR(증강현실) 게임 속에서 유명 브랜드의 샌드위치는 생명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쓰였고, 이온 음료는 체력을 채워주는 생명수로 묘사됐다. 이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과도한 PPL(간접광고)에 대한 불평이 줄을 이었다.

제작진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극본을 쓴 송재정 작가는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PPL을) 나름 효과적으로 녹이려다 보니 게임 아이템으로 쓰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새로운 방향의 PPL을 개척했다고 본다”며 “조금 튀는 부분이 있었지만 제작비와 타협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눈썰미 좋은 시청자라면 드라마에 어떤 브랜드가 참여했는지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화제작마다 간접광고가 넘쳐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연관성 없는 제품을 굳이 끼워 넣어 비판을 받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콘텐츠 가격이 미국 등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제작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진 만큼 드라마의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간접광고를 통해 드라마 제작비를 충당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 됐다. 시청자들도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 일정 정도의 광고는 수용하는 분위기이지만 문제는 과도한 PPL로 되레 콘텐츠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방송 제작진들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가는 모양새다.

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를 제외하고 많게는 30%, 적게는 10~20% 정도를 간접광고나 협찬으로 충당한다. PPL과 관련해 지적을 많이 받다 보니 작가나 제작사들도 광고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잘 녹아들지 못한 PPL은 극의 분량을 잡아먹고, 흐름을 끊는 요소가 된다. ‘남자친구’(tvN)도 뜬금없는 간접광고로 눈총을 받은 드라마 중 하나다. 가령 극 중 차수현(송혜교)의 운전기사 남명식(고창석)은 김진혁(박보검)에게 “이거 하나 들어요. 마시니까 몸이 가벼워지더라고”라고 말하며 음료수를 건넨다. 진혁은 또 생일선물로 준비한 립스틱을 수현에게 전하며 “이 립스틱 바른 모델 사진을 봤는데 대표님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나 샀어요”라고 한다. 송혜교는 해당 브랜드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비단 두 작품의 문제만은 아니다. 상위 0.1% 학부모들의 입시 전쟁을 다룬 ‘SKY 캐슬’(JTBC)은 한서진(염정아)이 다른 학부모들과 프랜차이즈 죽 매장에서 식사하는 장면 등을 방송으로 내보내면서 설정상 이질감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방송법 시행령은 프로그램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간접광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문철수 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제작비 규모에 맞게 간접광고의 양과 품목을 세세하게 잡고 제작을 시작하는 제작윤리가 필요하다. 드라마 중간에 급히 추가되는 광고는 몰입을 저해하고 시청권의 방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미스터 션샤인’(tvN)은 집필할 때부터 제과점 등을 염두에 둬 재치 있게 광고를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며 “단순히 제품을 노출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들어간 기획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