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은경(가명·32)씨는 최근 자신이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 경기도민, 그중에서도 2기 신도시인 ‘화성 동탄2’ 입주민임을 절감했다. ‘2등 시민’의 삶은 전쟁 같은 출근길에서 시작된다.
서울 잠실에 직장이 있는 동탄2 주민 은경씨의 출근길에 국민일보 기자가 동행했다. 은경씨가 기자와 함께 집을 나선 시간은 지난 17일 오전 7시. 은경씨의 출근길 막차는 SRT(수서고속철도) 동탄역에서 오전 8시5분 출발한다. 놓치면 지각이다. 은경씨 집에서 동탄역까지는 차로 6~7분 거리다. 하지만 자가용 출퇴근족인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워 은경씨는 집에서 동탄역까지 버스로 가야 했다. 그러나 이날 은경씨는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집 앞 버스부터 문제였다. 40분 넘게 기다렸지만 동탄역행 버스는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카카오택시와 콜택시를 한꺼번에 불렀지만 오겠다는 택시가 없었다. 도로까지 내려가 달리는 택시를 잡아탄 게 오전 8시10분. 집에서 나온 지 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고, 동탄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는 떠난 뒤였다.
뒤늦게 기차를 탔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좌석과 복도는 물론이고 객차를 잇는 좁은 통로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다. 은경씨는 밀려드는 승객에게 종잇장처럼 눌린 채 20분 가까이 달려야 했다. 기자 역시 같은 열차 안에서 온몸이 눌리는 체험을 했다. 숨쉬기가 힘들어질 무렵 동탄2 주민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며칠 전 SRT 안에서 승객 한 명이 실신했대요.”
2시간 넘게 걸려 서울에 도착한 은경씨는 “교통비가 한 달에 60만원 넘는 것도 부담이지만, 임신하면 이런 만원 SRT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저출산 대책이라고 신도시에 육아시설 잔뜩 만들면 뭐하느냐”고 반문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9일 3기 신도시 후보지를 발표했다.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 방안’도 함께 내놨다. 전문가들은 교통이 함께 고려된 신도시 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2기 신도시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2기 신도시 주민들은 그동안 두 가지 기대를 품고 ‘교통지옥’을 버텨 왔다. 정부의 투자로 언젠가 교통 여건이 나아지고 집값도 오를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서울과 가깝고 대중교통 여건도 더 좋은 3기의 등장은 이런 기대를 꺾어버렸다.
지난 10일 동탄2신도시 거리와 지하철역 등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박탈감이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서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발표한 화성 동탄1·2와 경기도 김포(한강), 인천 검단 등 2기 신도시는 10여년이 지난 현재 대표적인 신도시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선 서울이 너무 멀었다. 상당수 신도시가 서울에서 30㎞ 이상 떨어져 있다. 게다가 추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교통 인프라도 열악했다. 동탄2신도시가 그렇다. 약속됐던 트램 건설이 지지부진한 탓에 아직까지 동탄2에는 내부순환 교통편조차 없다.
은경씨 부부는 22일 “차가 없으면 집 앞 편의점 말고는 쇼핑도, 여가 활동도 불가능하다”며 “차 없이 갈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여기는 사실상 섬”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트램 예산 1조원을 확보하고 레일 부지까지 마련했다는데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답답해했다.
교통지옥이 동탄2신도시만의 얘기는 아니다. 김포 한강신도시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강신도시에 사는 서울 직장인들의 유일한 대중교통은 광역버스다. 하지만 살인적인 교통정체 탓에 출근시간대에는 올림픽대로 진입에만 평균 40분 넘게 걸린다.
주부 이신영(36)씨는 “버스가 과거보다 많이 생기긴 했지만 서울 강남 가는 건 여전히 힘들고 배차 간격도 40분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오는 7월이면 김포도시철도가 개통한다. 201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지 8년 만이다.
교통 인프라만 부족한 건 아니다. 2기 신도시에는 병원 학교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동탄2에서 만난 한 주부는 출산 당시 경험을 털어놓았다. 진통은 시작됐는데 택시는 안 오고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너무 멀었다. 그는 “당시 ‘내가 신도시에 살아서 죽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물론 열악한 인프라로 몸살을 앓는 게 2기 신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인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주민들도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출근길에는 서울 강남까지 1시간 이상 걸린다”고 불평한다. 서울 가는 길은 편도 1.5차로 도로와 북부간선도로뿐이라 출퇴근시간대 도로는 주차장인 데다 버스를 타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2.5㎞를 가는데도 한 시간이 걸린다. 일자리는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꼼꼼한 계획 없이 추진된 신도시는 늘 같은 문제를 몰고 다니는 셈이다.
김용민 전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집만 짓는 신도시 개발을 하는 게 근본 원인”이라며 “택지를 개발하고 민간 기업에 판매하는 데만 집중해 입주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집과 함께 도로와 대중교통, 교육 및 생활시설을 입주 시기에 동시 공급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개발 계획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도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건설 등 교통 인프라를 함께 발표한 3기 신도시의 경우에도 GTX가 제때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교통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하면 3기 신도시도 2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우 서윤경 기자 cmwoo11@kmib.co.kr
버스 40분 넘게 감감·기차는 실신지경, 2시간 출근전쟁
입력 2019-01-22 18:55 수정 2019-01-22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