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의회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이 부결된 이후 21일(현지시간)까지 ‘플랜B(차선책)’를 제시해야 하는 메이 총리는 논란의 핵심인 ‘백스톱’(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 통행 및 통관 자유를 위한 안전장치)을 삭제하는 대신 북아일랜드 분쟁을 종식시킨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을 수정해 막판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하지 않으면 의회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노동당 등 야권과 타협하는 수정안을 내놓지 않고, 보수당의 지지를 얻는 백스톱 조항 삭제를 놓고 EU와 재협상을 벌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벨파스트 협정 당사자인 아일랜드가 영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19일 북아일랜드에서 테러까지 발생하면서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고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백스톱은 영국과 아일랜드 간 ‘피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1937년 독립한 이후에도 북아일랜드의 6개 주는 영국에 남는 것을 택했고, 이후 북아일랜드에선 소수파인 아일랜드계 구교도와 다수파인 영국계 신교도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72년 1월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의 제2도시 런던데리에서 시위대에게 발포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무장조직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유혈 투쟁이 시작됐다.
테러와 보복이 끝없이 이어지자 영국과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의 귀속 문제는 북아일랜드인들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벨파스트 협정을 맺어 겨우 갈등을 봉합했다.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의 영유권을 포기했고, 영국은 대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했다. 벨파스트 협정은 두 국가 모두 EU에 가입했기 때문에 문제없이 지속됐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국경 통제가 강화되면 잠복했던 갈등이 표면화될 우려가 커지자 영국은 2020년까지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면서 추가 협상을 한다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이때까지도 해법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북아일랜드를 계속 EU 공동시장에 남겨둔다는 조항이 바로 ‘백스톱’이다. 그러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민주통일당(DUP)은 백스톱 조항 때문에 2020년 이후 영국 본토만 EU에서 분리될 수 있다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던 런던데리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북아일랜드가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메이 총리의 플랜B는 의회에서 토론을 거쳐 오는 29일 표결에 들어가게 된다. 제2 국민투표를 반대하는 메이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를 우려하는 의원들이 플랜B로 돌아서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플랜B 역시 하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를 감안해 일부 의원들은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법안을 바로 상정할 예정이라고 가디언이 전했다. 영국이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할 경우 EU의 나머지 27개 회원국으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어내야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의 일부 의원들은 브렉시트 문제를 의회로 완전히 이양시킨 후 탈퇴 날짜 연기를 요청하도록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 국민의 마음도 오락가락인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스카이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56%가 제2 국민투표에 반대하고 44%만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주에는 EU 잔류나 제2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측이 브렉시트 탈퇴보다 높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노딜 브렉시트’ 피하려다 ‘북아일랜드 테러’ 만난 영국
입력 2019-01-22 04:05 수정 2019-01-22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