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2박3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 머물며 외부 노출을 최소화했다. 김 부위원장의 행적을 쫓으려는 세계 언론들은 북·미 관리들과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뉴욕 마천루에서 스테이크 만찬을 하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등 각종 이벤트로 떠들썩했던 지난해 방미 때와 다른 행보다. 김 부위원장과 미국 측의 태도는 이번 회동이 이벤트성보다는 실무적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부위원장은 18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에 간 것을 제외하고는 호텔 안에만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고위급 회담과 오찬 회동도 모두 호텔 내부에서 이뤄졌다. 김 부위원장은 호텔을 출입할 때 정문이 아닌 건물 뒤편 화물용 쪽문만 이용했다. 김 부위원장이 호텔 로비에 나타난 건 덜레스 공항으로 가는 차량에 타기 위해 정문을 이용했을 때가 유일하다.
김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고위급 회담장에는 인권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사진이 진열돼 눈길을 끌었다. 기념촬영을 한 김 부위원장 뒤편에는 킹 목사가 연설하는 사진이 책장 위에 놓였다. 외신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김 부위원장을 맞으면서 킹 목사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킹 목사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맞선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는 김 부위원장 관련 일정을 거의 홍보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 부위원장과 만난 이후에도 북한 관련 트윗을 전혀 올리지 않았다. 기자들과 만나 “(김 부위원장과)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담당 국장은 19일 오후 8시쯤에야 김 부위원장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김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떠난 지 약 4시간 만이었다. 지난해 5월 1차 방미 때는 친서를 담은 봉투가 지나치게 커 시선을 끌었지만 이번에는 A4용지 크기였다. 스캐비노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부위원장, 폼페이오 장관, 김성혜 노동당 통일전선부 실장 등 인사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책상을 중심으로 북·미 양측 인사들이 부채꼴 형태로 정렬해 앉아 마치 백악관 참모회의를 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김 부위원장은 19일 낮 12시40분쯤(이하 현지시간) 숙소인 워싱턴 듀폰서클 호텔을 나섰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미국 측이 제공한 경호 차량을 타고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숀 롤러 국무부 의전장과 마크 내퍼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등 인사들의 환송을 받은 김 부위원장은 오후 3시50분쯤 중국 베이징행 에어차이나 818편을 타고 떠났다. 20일 밤 베이징에 도착한 김 부위원장은 21일 또는 22일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조성은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se130801@kmib.co.kr
北·美 1차 때와는 달리 행적 노출 최소화 ‘첩보전 방불’
입력 2019-01-20 18:25 수정 2019-01-20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