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지왕(喜劇之王)의 귀환이다. 돌이켜 보면 코미디 장르에서 그는 언제나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선사했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친근한 모습으로. 웃음 농도 100%의 영화 ‘극한직업’으로 돌아온 배우 류승룡(49) 얘기다.
극 중 류승룡은 실적 부진으로 매번 승진에서 밀리는 마약반의 ‘고 반장’ 역을 맡았다. 직장에서는 서장에게, 집에서는 아내에게 깨지기 일쑤이지만 네 명의 팀원(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들이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다.
국제 범죄조직의 마약 밀반입 정황을 포착한 마약반 5인방이 잠복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했다가 뜻하지 않게 맛집으로 대박을 터뜨린다는 게 영화의 얼개다. 전작 ‘스물’(2014)로 코미디에 특화된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병헌 감독의 신작인 만큼 리드미컬한 대사 호흡이 웃음을 빚어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저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면서 “여럿이 하모니를 이루는 코미디는 ‘7번방의 선물’(2013) 이후 오랜만인데, 이런 영화는 단순한 멀티캐스팅이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 조합으로 웃기는 맛이 있다”고 흡족해했다.
“코미디에 특별히 재능이 있다기보다, 몸의 세포들이 기억하는 게 있어요. 제가 ‘난타’의 초연 멤버였거든요. 5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면서 대사 없이 웃기는 ‘넌버벌(nonverbal)’ 코미디에 익숙해졌죠. 이후에도 장진 감독님과 ‘웰컴 투 동막골’ ‘택시 드리벌’ 같은 연극을 했고요.”
‘극한직업’에서 가장 큰 폭소를 자아내는 대사 역시 류승룡의 입에서 나온다. 주문전화를 받을 때마다 천연덕스럽게 읊조리는 그의 응대 멘트.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류승룡은 “입에 착착 붙더라. 내 몸에 잘 맞고 관객들이 보시기에도 편안한 옷을 입은 것 같아 굉장히 반가웠다”고 미소를 지었다.
후배들과 함께한 현장에서 그는 리더 역할을 해냈다. 류승룡은 “치열하되 행복하게 촬영하자는 게 목표였다”면서 “가장 경계한 건 ‘오버하지 말자’는 거였다. 누구 하나가 도드라지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가며 연기했다. 마치 협동조합처럼 하나가 됐던 것 같다”고 웃었다.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세 편의 1000만 영화를 보유한 그이지만 ‘도리화가’(2015) ‘염력’ ‘7년의 밤’(이상 2018) 등 최근 잇단 흥행 부진을 겪었다. “같이 작업한 분들께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죠. 긴장과 설렘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흥행에 대한 자신감은 금기시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삶의 방식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다도와 목공, 여행을 취미로 삼아 마음을 채우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감정을 세공해야 배우로서 웃음과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예전에는 스스로를 채근하고 괴롭혔어요. ‘뭔가 더 보여줘야 돼, 변신해야 돼’ 강박이 있었죠. 자기애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나를 돌아보며 회복하는 중이에요.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게 됐거든요.”
그는 “‘배우 류승룡’과 ‘사람 류승룡’의 간극이 좁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좋은 배우이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미래를 계획할 순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들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류승룡 “내 몸에 맞는 코미디… 강박 잊고 행복을 찾아” [인터뷰]
입력 2019-01-22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