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되는 일이 없네”… 셧다운 빅딜 카드 단박에 퇴짜

입력 2019-01-21 04: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이민자 귀화 행사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이라크 출신 여성 에스타브라크 아델 알 사야드와 악수하고 있다. 알 사야드는 남편과 함께 201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래쪽 사진은 같은 날 워싱턴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돼 벌인 반트럼프 시위 모습. 한 여성이 원더우먼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을 그린 만화 포스터를 들고 있다. AP뉴시스

취임 2주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면초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 사태는 연일 역대 최장 기록을 돌파하며 국민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을 끝내기 위한 카드로 국경장벽 예산 편성과 다카(DACA·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제도) 연장을 맞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단번에 거절했다.

20일(현지시간)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는 날이다. 그는 전날인 19일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민주당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 57억 달러를 수용하면 다카를 3년 연장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내전이나 자연재해를 피해 망명한 이민자에게 적용되는 ‘임시보호지위(TPS)’ 기간을 3년 늘리는 방침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다카는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으로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탓에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청년들에 한해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70만명의 불법체류청년에게 적용되는 다카는 대표적인 ‘오바마의 유산(legacy)’으로 꼽힌다.

그러나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없는 것(non-starter)”이라며 “우리가 과거에 거부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관련 정책을 다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의회와 행정부가 국경장벽 예산과 관련한 협상을 시작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연방정부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에 공개적으로 타협안을 제시한 건 셧다운이 시작된 지난달 22일 이후 처음이다. 20일 기준으로 30일째를 맞는 셧다운 사태는 자고 일어나면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셧다운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입는 국민들은 늘어나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셧다운에 대한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는 응답은 47%에 달했지만 민주당의 경우 33%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달 28일 기준 모닝컨설트 조사 결과 39%까지 내려갔다. 보수성향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조차 대통령 지지율(14일 기준)이 43%에 그치며 1년 사이 최저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전역에서 반(反)트럼프를 외치는 여성 행진(Women’s March) 시위까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다음 날인 2017년 1월 21일에 처음 열린 이 시위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통령 취임일에 맞춰 진행됐다. 특히 백악관 인근 프리덤플라자 광장에는 1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모였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시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차별적 행보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과 여성비하 발언,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고교시절 성폭행 의혹을 받고도 의회 승인을 받은 것에 대한 시민들의 성토가 빗발쳤다.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2020년 대선 때는 늙은 백인 남성이 승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언론은 셧다운 장기화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그의 재선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캠페인 참모들은 셧다운이 그의 재선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정치적 점수를 따는 것에만 급급하다는 우려가 백악관 내에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