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벌녀’가 어때서… 인체 조각에 담아낸 시대상

입력 2019-01-20 18:23
벤치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여성을 형상화한 ‘나타샤’(2018).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벤치에 팔을 괴고 앉아 있는 ‘쩍벌남’. 알고 보니 여자다. 때론 눈, 코, 입매 등 표정의 디테일보다 자세가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 더 유용할 때가 있다. 프랑스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56·사진)이 서울 성북구 갤러리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갖고 있는 개인전에 나온 인체 조각들은 그런 생각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로 참여한 이후 가진 첫 개인전이다. 디테일보다 태도를 중시한 인체 조각 등 신작 20여점이 나왔다. 인체 조각 ‘쩍벌녀’의 모델은 작가의 지인인 30대 프랑스 여성 나타샤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자세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뿐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의 흐름도 읽을 수 있다. 나타샤처럼 저렇게 다리를 벌리고 앉는 건 1950년대라면 남성의 이미지였으나 요즘엔 여성에게도 자연스러운 포즈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편적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 철학이 그렇다 보니 베이앙의 인체 조각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다. 눈, 코, 입이 없는 것은 물론 표면을 다면체로 깎아냄으로써 태도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그는 “예술은 그 시대의 문명을 드러내야 하고, 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상호 교감하는 일”이라며 “사람들의 시각이 한정적이어서 모두 다 본다고 생각하지만, 못 보는 게 굉장히 많아서 실제로는 결국엔 이미지만 남지 않느냐. 그래서 인체를 추상화해 특징을 잡아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작가는 인체 조각의 추상성을 통해 대상의 외형이 아니라 존재감 그 자체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런 그에게선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던 세잔의 태도가 읽힌다.

베이앙의 조각은 3D 같은 첨단 기술과 함께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즉 모델을 세워두고 3D로 스캔해 입체 형상이 만들어지면 추상화하듯이 표면을 깎아내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작업 방식은 인체를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19세기 화가들이 사진술을 개발했고, 드가 등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작품을 할 때 사진의 도움을 받은 것과 유사하다. 이번 전시에는 액자에 탄소 줄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 붙여 미니멀리즘 회화처럼 보이게 한 ‘레이’ 시리즈 등 다양한 ‘부조 회화’도 나왔다. 2월 15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