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비움, 낮아짐, 나눔의 예수 바라보자

입력 2019-01-22 00:06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인간 구원이라는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사람들에게 수치와 모욕 등을 거리낌없이 당하셨다고 밝힙니다. 이를 통해 예수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시는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주님이 우리 믿음의 주가 되셨고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 모욕을 통해 주님의 세 가지 면을 보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 부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욕망을 부인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시며 연이어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가지신 주님도 십자가가 의미하는 저주와 고통, 치욕을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아시기에 마음의 한쪽에서는 지나갔으면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자신의 욕망을 부인하심으로 자기 부인의 정형을 보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낮아지심입니다. 주님의 생애를 표현하는 단어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낮아지심’입니다. 주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파격적 낮은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의 생애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죄인들과 소외된 자들, 병든 자 등 낮은 자들을 먼저 챙기셨습니다. 말씀하실 때도 항상 하나님을 먼저 높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십자가 고통의 죽음 앞에서도 주님은 낮아지셨습니다. 하늘의 12영이 넘는 천군들을 동원해 그들을 처리하실 수 있었지만 주님은 그 방법을 멀리했습니다.

셋째, 나누어주심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먹이시면서 이를 자신의 몸으로 여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 십자가 위에서 고통 가운데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라는 열매를 나눠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 주님은 아낌없이 당신의 삶을 나누시고 죽어가는 수십억, 수백억의 영혼들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자기 부인과 낮아지심, 나누어주심으로 인간들을 구원하는 큰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그래서 잠시의 괴로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로 가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제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인간적 욕망을 내려놓으라’ ‘낮은 곳으로 가라’ ‘나누라’. 예수님은 이것이 그를 따르는 제자의 길이며 구원을 이루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 길을 저와 함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쉽지 않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안에는 기복주의와 개교회주의가 만연돼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복음으로 기인하지 않고 썩어질 인간 본성에 있는 성공 부유 권력 등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넓은 길에서 이탈해야 할 것입니다. 비움과 낮아짐, 나눔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예수는 하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이 되어(히 8:1)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유인환 인천 징검다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