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공익제보자라며 유튜브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얼굴엔 여유가 있었다. 함께 올린 글에선 “공무원을 그만둔 뒤 살이 찐 것 같다”는 농담까지 던질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유서를 쓰고 극단적 시도를 하기까지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공개적으로 밝힌 그 내용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소모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타일렀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게다.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의 폭로에 고발로 대응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과 상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할 상황에서 비장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었을까. 폭로도 ‘먹방’ 찍듯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던 그의 자신감은 점점 위축돼 갔다. 그가 출신 대학 게시판에 올린 마지막 글은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연말과 연초를 달궜던 이 사건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중이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좁은 시야에 사로잡힌 전직 사무관의 일탈’ 정도로 정리되고 있다.
과연 그렇게 넘어가도 괜찮은가. 예상보다 세금이 많이 걷힌다는 보도가 2017년 한 해 내내 나오고 있었다. 기재부 안팎의 많은 전문가는 8조7000억원의 국채 한도 여유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더 일찍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 시점을 놓치면서 기재부는 11월 15일로 예고돼 있던 1조원짜리 바이백(만기가 가까운 국채를 신규 국채를 발행해 대체)을 하루 전날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늦게나마 시작된 의사결정 과정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각 실국이 최선의 결과를 위해 얼마나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논쟁에 참여했던 맨 일선의 실무자가 상부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강압을 감지했다면 그게 진짜 논쟁이었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애초 의사결정 지연의 배경에도 같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적자 국채를 더 발행하지 않았고, 신 전 사무관이 제기한 의혹은 실행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의 기재부 해명은 여전히 무책임해 보인다.
신 전 사무관의 용기가 어린 사무관의 치기쯤으로 치부되는 점은 이번 사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는 공직자로서 나름의 신념과 소신을 기준 삼아 스스로 질문하길 멈추지 않았다. 고민 끝에 힘든 고시 생활을 거쳐 받아들었을 기재부 사무관 임명장을 스스로 반납했다. 그러고도 부채의식을 덜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유튜브를 찍고, 기자들 앞에 섰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도는 관가에서 아껴야 할 태도이지 않은가. 상부의 지시가 행여 부당하지는 않은지 따져보지 않고, 그저 지시받은 대로 일만 잘 처리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 하물며 거친 언행으로만 기억되는 어떤 국회의원으로부터 “가증스럽다”고 매도당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충분히 고민해봄직한 문제 제기를 학원 강사로서 몸값을 높이기 위한 행위로 몰아붙여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제 신 전 사무관이 올렸던 유튜브는 모두 삭제됐고, 기재부의 고발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가 공개적으로 또 다른 제보나 폭로에 나설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그를 기억하는 대개의 기재부 간부들은 “항상 아이디어가 많고, 일 잘하던 후배였다. 선배로서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는 “고발 취하를 깊이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개인적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홍 부총리와 기재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마땅한 명분이 생기길 기다리는 걸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건이 서서히 지워질 시점을 재고 있는 걸까. 다행히 유서가 되지 않은 마지막 글에서 신 전 사무관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1. 내부 고발을 인정해 주고 당연시하는 문화. 2. 비상식적인 정책 결정을 하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에게 최대한 공개하는 문화. (…) 조금 더 나아지고 조금씩 시스템이 더 개선되길 바랄 뿐이다.’
정현수 경제부 기자 jukebox@kmib.co.kr
[가리사니-정현수] 신재민 사태를 돌아보며
입력 2019-01-21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