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한 능력으로

입력 2019-01-22 21:26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 삶의 주제를 ‘선한 능력으로’라고 정했다. ‘선한 능력’이란 말은 본래 독일 나치 폭정에 반대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 생활을 하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처형을 당하기 직전 감옥에서 시를 쓰면서 한 말이다. 그는 히틀러가 집권한 기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낸 구원자”라고 히틀러를 치켜세울 때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미친 운전사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히틀러 제거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 히틀러 폭정(暴政)이 세(勢)를 더해가고 거의 모든 국민, 학자들, 성직자들까지 히틀러를 찬양하던 그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신뢰하고 희망의 새역사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선한 능력’을 바라보고 역사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밝아 온 새해 아침에도 우리 주변에 드리운 짙은 안개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희망을 말하지만 막연한 요행을 바랄 뿐이다. 여기저기 교회당은 즐비하지만 길을 환히 비춰줄 불빛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여기저기 소금을 자처하지만 점점 그 맛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평화를 떠들고 있지만 그것이 도리어 국민의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것이 되고, 정부가 저토록 인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은 사람다움의 상실을 염려하고 있다. 우리는 성역(聖域)도 성직(聖職)도 성직자의 자격 여부까지도 권력이 결정하는 절대 가치 상실의 혼돈의 때에 새해를 맞았다. 분명 빛이지만 말 아래 숨겨져 있고 분명히 소금이지만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땅엔 빛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이 땅엔 소금이 필요하다. 그리고 희미해졌지만 교회는 역시 이 땅의 빛이고 시대의 소금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지금도 시대적 소명과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우리는 이 역사에 보냄 받은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해를 이 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비록 우리의 빛이 희미해졌고 비록 우리의 짠맛이 창피할 만큼 싱거워졌어도 그래도 우리가 빛이고 우리가 소금이고,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시대의 생명을 맡겼고 이 시대를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라”라고 명하신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우리 신앙의 진정성을 회복함으로 가능하다. 행함과 진실함으로(요일 3:18) 가능하다. 신앙의 진정성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길 때 확인한 단 한 가지 조건은 사랑의 진정성이었다.(요 21:15~17)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신앙의 진정성이다. 우리 시대 교회의 문제는 사회봉사의 부족이나 선한 행위의 부재보다 신앙의 진정성의 부족 문제이다.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윤리적 모범이나,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돕는 사회봉사나, 윤리적 삶이나, 남에게 보여주는 어떤 신앙행위 이전에 먼저 우리 심령이 믿음으로 바로 되고 하나님의 현존이 삶에서 나타나는 신앙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여야(Doing) 한다는 행위보다는 무엇이 되어야(Being) 하는 존재 회복이 지금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우리의 우선 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를 인정한 베드로를 통해 역사하셨다. 우리는 세상에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절망적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기대했던 본회퍼처럼 이 불안한 현실 결코 밝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신앙의 진정성으로 세워질 그 ‘선한 능력’으로 시대를 세워야 한다. 우리의 힘은 ‘선한 능력’에 있다.

이만규 원로목사 (서울 신양교회)

약력=△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졸업 △21C목회연구소 이사장 역임 △예장통합 목회정보정책연구소 이사장 △한국기독공보 논설위원 △한국목회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