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창구’ 국회 파견 판사… “접대하고 친목 쌓고 가욋일에 치중”

입력 2019-01-18 04:02
17일 국회 의원회관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앞. 서 의원은 2015년 국회 파견 판사를 사무실로 불러 자신의 지인 아들의 재판 결과에 관해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여야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은 국회 파견 판사 제도가 과거부터 ‘로비 창구’로 악용될 소지가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원실로 파견 판사를 불러 지인 아들의 재판 결과를 벌금형으로 해주도록 요청했다는 수사 결과가 ‘재판 청탁’ 관행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국회는 17일 판사 출신 전문위원을 받지 않기로 하는 등 관련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하지만 서 의원이 의원실로 부른 파견 판사는 전문위원이 아닌 자문관이어서 제도 개선의 한계는 남아 있다.

판사의 국회 파견 제도는 2002년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됐다. 법원은 국회에 전문위원과 자문관 등 2명의 판사를 파견해 왔다. 전문위원은 퇴직 후 국회에 임용되는 방식이지만 근무 후에 판사로 복귀되기 때문에 ‘편법 파견’으로 불린다. 국회 파견은 법원행정처 발령 등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로 알려져 있다.

국회 법사위원들은 “과거에 종종 파견 판사를 악용한 사례가 있고, 국회의원들이 이들에게 청탁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법사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본래 파견 취지에 맞지 않게 재판 청탁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과거에는 암암리에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사위원도 “법원과 국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이자 19대 법사위 국회의원이었던 서기호 변호사도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파견 판사 제도는) 당장 폐지해야 하는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변호사는 “국회 법사위에 4년간 있으면서 심각성을 많이 느꼈다”며 “정말 판사가 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파견 판사는 본래 역할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 의전을 하고, 보좌진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친목을 쌓는 등 가욋일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판사 출신 전문위원을 선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입법부가 사법부와 암암리에 유지해오던 모종의 연결고리를 끊기로 결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 이계성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법부가 국회에 판사를 보냈던 것은 과거 국회의 입법 역량이 부족해서였지만 이제 국회 자체적으로 역량을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혁신자문위원회는 행정부·사법부 등 국회 파견 공무원 수를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20일 판사 전문위원 임기가 만료되면 후임자는 내부 승진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국회 관계자는 이날 개방형 직위 선발 시험위원회를 열어 전문위원 지원자 서류를 검토했지만 적격자를 찾지 못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 전문위원뿐 아니라 자문관 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필요하다면 (국회 파견 공무원 제도의 개편을) 하겠다”며 “문제가 드러나면 개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민주당 법사위원도 “법사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며 “파견 판사 제도를 아예 없애겠다고 하면 여당 입장에서 반대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판사 전문위원을 없앤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나아가 자문관까지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