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는 28시간, 양승태의 조서 열람은 30시간, 왜?

입력 2019-01-18 04:03

대법원장으로 사상 처음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양승태(사진) 전 대법원장이 기록을 하나 세웠다. 검찰 조사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피의자 신문 조서를 열람한 것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모두 28시간 조사했고 그는 30시간 이상 검찰 조서를 살펴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14일, 15일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11일에는 14시간30분 동안 검찰 청사에 있었는데, 이 중 3시간을 조서 열람에 투자했다. 12일에는 조서 열람을 위해 검찰에 출석해 10시간 동안 머물렀다. 양 전 대법원장은 14일 조사 뒤에는 조서 열람을 건너뛰었다. 대신 15일 검찰에 출석해 5시간 조사를 받고 8시간30분 동안 조서를 읽었다. 검찰은 필요한 조사를 이날 다 마무리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조서 탐독’을 이어가겠다고 요구했다. 그는 17일 오전 9시 검찰에 출석해 반나절 이상 조서를 살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열람 시간은 모두 합쳐 30시간을 넘어섰다. 한 검찰 관계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라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도 조서 열람에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14시간 조사를 받은 뒤 열람에 7시간30분을 썼다. 이 전 대통령은 15시간 조사를 받고 6시간 동안 조서를 열람했다. 다른 판사 출신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해 10월 15시간 조사를 받았지만 조서 열람에는 4시간 밖에 투자하지 않았다.

조서 열람은 문구를 수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재판 대비책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신문 조서는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의 문답으로 이뤄져 있다. 검찰 질문을 면밀히 살펴 법리 구성에 허점이 있는지, 증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조서 열람을 통해 검찰 수사 내용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세우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수정 요구는 많지 않다고 한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일정을 늦추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6일을 건너뛰고 추가 조서 열람 날짜를 17일로 통보했다. 변호인 중 한 명의 재판 일정이 16일에 잡혀 있다는 이유였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은 다른 변호사도 선임했고, 굳이 특정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하지 않다”며 “검찰의 수사 일정을 꼬이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