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으로 20조원대 초과세수 발생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다음해 예산안(재정지출안)을 짤 때 추산한 세수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계속 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더 많이 걷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초과세수는 나라살림이 흑자이고 탄탄한다는 방증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정부가 초과된 세수만큼 지출을 더해 경기 부양, 복지 강화 등에 쓸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래놓고 무슨 ‘확장적 재정정책’이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7년 하반기 들어 정부는 예측보다 수입(세수)이 많아지자 고민에 빠진다. 나라곳간을 최대한 열어 돈을 쏟아붓는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면 연말에 수십조원의 돈이 남아서는 안 된다. 예상치 못한 수입이 발생했다면 지출을 더 늘리고, 계획했던 ‘빚내기(국채 발행)’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는 빚을 줄일지, 지출을 늘릴지 갈팡질팡한다. 그러다가 결국 남은 돈으로 빚을 줄인다. 그만큼 지출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이런 과정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에 담겨 있는 당시 상황이다.
왜 정부의 ‘나라곳간 사용법’은 우왕좌왕일까. 정부가 ‘모순의 덫’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①최대한 많이 지출하되, ②빚을 더 늘리지 말아야 하고, ③증세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3가지 목표를 좇는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목표다. 결국 빚을 더 내지도, 세금을 더 걷지도 못하는 정부는 경기에 따라 출렁이는 ‘초과세수’에만 의존해야 한다.
정부가 ‘과감한 지출’을 말하면서도 빚 늘리기를 기피하는 것은 아무도 나랏빚을 얼마까지 늘려도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뿌리를 둔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2.5% 수준이다. 미국(136.0%)이나 일본(233.0%)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양호하다.
한국이 빚을 더 늘릴 여력이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 모두 인정한다. 다만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보수적인 전문가는 미래를, 진보적인 전문가는 현재를 본다. 보수 쪽에서는 빠른 고령화, 취약한 연금구조, 둔화되는 성장률을 거론한다. 가만히 있어도 미래에 나랏빚이 폭증하기 때문에 현재 부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의 빚을 늘릴 수 있는 재정여력은 GDP 대비 225%이지만, 고령화와 복지지출 증가 수준을 고려하면 GDP의 40% 수준이 맞다”고 분석한 이유다. 반면 진보 쪽은 여력이 있을 때 지출을 늘려 나랏빚이 폭증할 근본 원인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팽팽한 논쟁 속에서 정부는 몸을 낮추고 있다. 정부는 40%대 국가채무비율을 유지할 방침이다. 지출은 늘리되 빚은 늘릴 수 없는 모순이 여기에서 탄생한다. 이걸 해결하려면 증세를 하면 된다. 하지만 증세는 국민적 조세저항이라는 부담을 함께 안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공약에서 5년간 61조원의 증세(세법 개정+탈루세금 징수 강화)를 제시했지만, 정권 출범 후 17조1000억원으로 규모를 줄였다. 부족한 재원은 초과세수와 기금 활용 등으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하고 싶지만 빚을 늘리기 싫고, 증세도 최소화하는 어정쩡한 기조가 국가재정 운용을 꼬이게 만든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세수 호황으로 별다른 증세 없이 초과세수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 다만 초과세수는 추계치보다 세금이 더 걷히는 일종의 ‘착시효과’다. 경기 둔화로 당장 올해부터 초과세수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법으로 ‘정직한 세입기반 확대’를 지목한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만큼 ‘중(中)부담 중(中)복지’를 향한 보편적 증세, 연금개혁 등 불편한 이야기도 사회적 공론화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재정 정책은 세입 확충부터 시작되는데, 확장적 재정정책 깃발은 들었지만 뿌리가 없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모순의 덫’에 빠진 재정정책, 과감하게 돈 풀겠다더니 3년 연속 세금 20조원 남았다
입력 2019-01-18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