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수형인 공소기각… “70년 만에 무죄 인정 받았수다”

입력 2019-01-18 04:00
제주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했던 할머니가 1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재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후 임재성 변호사의 손을 잡고 감격해 하고 있다. 뉴시스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70년 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제주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불법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다. 남은 생존 수형인들의 재판과 제주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진상규명, 피해자 명예회복 활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제갈창)는 17일 임창의(99·여)씨 등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청구인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기각은 유무죄 선고와 달리 공소절차 상의 흠결을 이유로 재판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것이었으므로 당시의 재판 자체가 ‘무효’라는 의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모두 일관되게 어떤 범죄로 재판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진술하고 있고, 사전에 공소장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짧은 기간 2500여명에 이르는 수형인들이 재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9월 3일 제주 4·3 수형인 가운데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이후 같은 해 10월 29일부터 12월 17일까지 네 차례 공판을 진행했다. 당시 재심 개시 결정을 한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돼 군법회의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청구인들이 구속 기간인 40일을 초과해 구금돼 있었던 사실과 폭행 및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던 일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17일 열린 마지막 공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공소 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면서 “피고인들 전원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구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85세에서 99세에 이르는 재심 청구인들은 1948년 가을부터 이듬해 7월 사이 제주도내 수용시설에 강제로 구금됐다. 이들은 고등군법회의에서 주로 내란죄나 간첩죄 혐의를 받아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형을 선고 받았다. 수형인 명부에는 총 2530명이 기록돼 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옥사하거나 총살 당하는 등 행방불명됐다. 가까스로 생존한 수형인들은 2017년 4월 19일 재심을 청구했다.

오계춘(99) 할머니는 “아이를 업고 도망치던 중 굶주린 아기가 죽었다. 죽은 아이를 목포 길거리에 두고 온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우룡(94) 할아버지는 “아무 죄 없이 7년6개월이라는 시간을 잡혀 옥살이를 했다”며 “4·3은 나에게 늘 족쇄였다. 죽기 전에 명예를 꼭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인들은 이날 재판 후 가슴에 나리꽃을 달았다. 나리꽃은 ‘진실을 드러내 무죄임을 밝혔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평국(90) 할머니는 “너무 시원하다. 옥살이를 했던 흔적이 없어지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양일화(91) 할아버지는 “고통과 아픔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이번 판결이 지지부진한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비롯해 4·3 문제가 풀리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4·3도민연대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수형인 18명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