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개방하니 모임이 생겼다. 모임은 관계를 만들었고 관계는 마을을 변화시켰다.
경기도 파주 문발동에 사는 최석진(50) 대한성공회 신부는 2016년 4월 자신의 집 1층을 이웃에 내놓았다. 한 주민이 이곳에 탁구대를 기증하자 탁구모임인 ‘우동탁(우리동네탁구모임)’이 생겨났다. 한쪽 싱크대에선 반찬이 만들어져 저소득층 이웃에게 전해졌다. 어른들은 품앗이로 동네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됐고 주민들은 수시로 모여 합창을 연습했다.
문발동 마을 소통 공간 ‘마당’에서 17일 만난 최 신부는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라며 “배려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위해 마당을 열었다”고 말했다. 마당은 ‘마을 성당’의 줄임말이지만 여느 종교시설 같지는 않다. 이날 이곳에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가정주부에게 영어를 배웠고 마을 통장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 신부의 원래 일터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주거위기가정·지적장애인자립 지원 사회선교센터인 대한성공회 ‘함께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의 본격적인 목회는 퇴근 후 이뤄진다. 엿새 전 금요일 저녁에는 이웃들과 마당에서 탁구를 쳤고 토요일에는 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과 나눴다. 마당에서 주일예배가 열리자 신앙이 없던 이웃들도 스스럼없이 찾아와 종교와 인문학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최 신부에게는 이 모든 시간이 목회다.
다세대주택이 많은 문발동의 주민들은 서로 이웃사촌이 됐다. 함께 김장한 지는 3년. 이들은 인근 심학산 아래 텃밭에 모여 감자 콩 배추를 심어 수확한 뒤 나눠 먹는다. 봄가을이면 이웃돕기 바자회를 열어 생필품을 기증했고 운동회를 열어 발야구와 피구 게임 등을 즐긴다.
최 신부는 이곳에서 신부님이 아닌 동네 아저씨 같았다. 목회자로서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1998년 천주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최 신부는 의정부교구에서 사회복지사목부를 담당했다. 이웃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성공회 나눔의집 모델에 감명받았지만 실현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회의감에 2006년 사제직을 그만두고 호주로 건너가 냉난방기술학교에 다니려 했지만 호주 멜버른 성요한 성공회교회 신부의 권유로 멜버른신학대학원에서 성공회 성직자 과정을 밟았다. 2012년에는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 자활을 위해 순댓국밥집을 열고 순대까지 직접 썰었다.
그런 최 신부에게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당은 십자가 첨탑을 지닌 기존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한다’는 성공회 선교 정신과 맞닿아있다. 최 신부는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며 “마을 살이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 본질을 찾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파주=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신부님 집 1층 활짝 열었더니 동네 ‘마당’이 됐다
입력 2019-01-2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