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성규] 경유차주는 죄가 없다

입력 2019-01-18 04:02

5년 전부터 경유차를 몰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국정홍보방송에 나와 “경유차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배출 원인의 92%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입 당시 경유차가 이렇게 나쁜 물건인지 몰랐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자동차는 2320만2555대다. 이 중 경유차는 992만9537만대로 10대 중 4대꼴이다. 경유차가 전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8%로 사상 최고치였다. 한국인들은 왜 이리 ‘나쁜’ 경유차에 꽂힌 것일까.

경유차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은 노무현정부 때부터다. 당시 정부는 2005년 국제기준보다 엄격했던 경유차 배출가스 허용치를 낮춰 경유승용차의 내수판매를 허용했다. 얼핏 국민의 차량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주된 이유는 자동차 수출 때문이었다. 현대차는 2000년대 초부터 유럽 경유차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유럽 나라들로부터 “너희 나라에서는 타지도 않는 차를 수출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리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정부는 2003년 3월 발표한 투자활성화방안에서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 내수판매 허용 방침을 밝혔다. 이 방안에는 2001~2002년 유럽 경유승용차 수출이 4만5000대에 그쳤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의 수출 진흥 정책에 힘입어 현대차의 유럽 경유차 수출량은 급속도로 증가해 2005년 20만대를 돌파했다.

이명박정부는 한술 더 떠 2009년 ‘클린디젤’ 정책을 들고 나왔다. 노무현정부에서 경유승용차를 도입한 것과 비슷하게 경유 택시를 보급했다. 지금은 수감 중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클린디젤자동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어 에너지와 환경문제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미래 성장동력산업”이라고 극찬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자금 지원도 뒤따랐다.

경유차가 친환경과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지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2015년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지며 경유차는 계륵 신세가 됐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두 정부가 경유차를 떠받드는 동안 환경문제는 뒷전이었다. 2005년 경유승용차 판매를 허용하면서 향후 10년간 수도권 대기환경개선 특별대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현 정부도 미세먼지 문제에는 할 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줄이고 대통령 직속 특별기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대통령 직속이 아닌 환경부 산하에 만들어졌던 미세먼지대책위원회는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잠정 종료했다.

정부는 17일 수소차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수소차는 특정 자동차업체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설명하는 미래 성장동력이며 친환경적이라는 수소차의 장점은 과거 클린디젤과 비슷하다. 홍남기 부총리마저 지난해 수소차 보급대수가 2000대인지 2만대인지 헷갈리면서도 정부는 수소차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윤종원 경제수석은 전날 한 포럼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과 함께 ‘국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유차와 수소차 지원 정책을 보면 이미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만들어진 것 같다.

최근 SNS 등에서는 현 상황을 조선시대에 빗댄 ‘문조 3년’이란 글이 퍼지고 있다. 매년 청나라에서 불어오는 모래먼지에 백성들이 숨 쉬기 힘들다 아우성인데 임금이 청을 두려워해 백성들의 아궁에서 나오는 연기가 잘못이라며 아궁이 사용을 금했다는 풍자적인 내용이다. 아궁이에 경유차를 대입하면 ‘가짜뉴스’나 ‘괴담’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경유차 정책의 과실은 특정 기업이 모두 갖고 간 반면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경유차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걱정해야 하는 나라는 ‘국민하기 어려운 나라’임이 분명하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