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브렉시트 땐 전환기간 없이… 영국·EU 바로 이별

입력 2019-01-17 04:00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가 의회에서 부결된 뒤 발언대에 나와 격정적인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영국 하원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과 맺은 EU 탈퇴 협정안을 반대 432표, 찬성 202표의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켰다. 영국은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3월 29일에 곧바로 EU에서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메이 총리는 “문제 해결 없이 시간을 끌수록 사태는 더욱 불투명하고 어렵게 흘러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AP뉴시스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가 현실화될 경우 영국은 3월 29일 오후 11시(현지시간) 정각에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다. 1973년부터 46년 동안 한 지붕 아래 살던 영국과 EU는 한순간에 남으로 돌아선다. 탈퇴 충격을 막기 위해 마련한 완충장치들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현재로선 무용지물이다.

영국과 EU는 탈퇴협정을 체결하면서 브렉시트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3월 29일 이후 2020년 말까지 21개월 동안을 과도기로 설정했다. 이 기간 영국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하며 양측 시민들이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탈퇴협정이 영국 의회에서 부결된 현재 상황이 3월 29일까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영국은 곧바로 EU 회원국 지위를 잃는다.

이 경우 영국은 EU 통상규정을 준수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동시에 EU가 제3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도 적용 받을 수 없다. EU는 물론 한국, 미국 등 비(非)유럽 국가들과도 따로 FTA를 체결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 해가 소요되는 협상 기간 영국과 세계 각국은 각자 상대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부담에 따라 영국에서 팔리는 수입품 가격은 인상이 불가피하다.

EU 회원국에 거주하는 영국인과 영국에 거주하는 EU 회원국 국민의 법적 지위는 불투명해진다.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에는 ‘하드 보더(hard border·엄격한 통행·통관 절차)’ 문제가 발생한다. 양국 사이에 국경 통제가 개시될 경우 영국과 아일랜드 간 오랜 종교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으로선 EU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이민정책을 추진할 순 있다.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 물자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필품 품귀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시민들은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다. 비상식량과 조리도구, 의약품을 담은 ‘브렉시트 서바이벌 팩’도 팔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은 16일 브렉시트 관계 부처 대응회의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에도 영국과의 무역 비중이 낮아 실물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해 영국과의 독립적인 FTA를 최대한 빨리 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성은 기자, 세종=전슬기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