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한진 주주권 행사 검토… 오너일가 손보나

입력 2019-01-17 04:00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지주사격인 한진칼과 계열사 대한항공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지 검토하기로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여러 비뚤어진 행동이 주주가치를 훼손시켰는지를 따져 조 회장의 이사 연임 반대 등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결정할 경우 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첫 사례가 된다. 다른 기업에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경제계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투자가가 ‘집사(Steward)’처럼 연금 가입자의 재산이 투자된 기업의 가치를 충실히 관리하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16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검토하기로 의결했다. 검토는 기금운용위 산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맡는다. 수탁자책임 전문위는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이후 기존 의결권 전문위가 확대 개편된 것으로 전문가 14명이 위원을 맡고 있다. 이들은 주주권 행사 필요 여부와 행사 범위 등을 논의해 기금운용위에 제시한다.

기금운용위는 이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2월 초까지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할 경우 주주총회일 6주 전에 해야 하는 점과 두 기업이 3월 주총을 여는 점을 고려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3대 주주이자 대한항공의 2대 주주다.

기금운용위가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면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연임 반대에 나설 수 있다. 조 회장은 다른 사외이사 한 명과 함께 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주총에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에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기금운용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수탁자책임 전문위가 사외이사 선임 주주제안과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안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검토에 나섬에 따라 ‘정치적 간섭’ 등 관련 논란이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재벌 견제가 가능해졌다며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국경제인연합 관계자는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가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수탁자책임위도 자문기구에 불과해 반대 의사를 내도 운용위가 의지를 갖고 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다른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어떤 식으로 주주권을 행사할지 막연했었던 다른 연기금 등에 국민연금이 방향을 제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아직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들이 도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

기업 지분을 확보하고 경영에 관여하는 ‘행동주의 펀드’와 국민연금이 연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강성부 펀드)는 국민연금이 겨냥한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지분을 10.71% 보유하고 있다. 다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적 연기금이 사회활동을 하는 기관과 연대하는 건 어렵다”며 “(KCGI가) 영향을 받을 순 있겠지만 국민연금은 언제나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영선 나성원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