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원의 편지…“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

입력 2019-01-19 04:03

저자 임상철(52)씨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만 가늠하면서 살아가는 ‘홈리스’다. 지난 18년간 그는 고시원이나 쪽방이나 PC방을 전전했고 돈이 떨어지면 거리에서 한뎃잠을 잤다. 오랫동안 임씨는 “생존을 위해 도시를 떠도는 들개”와도 같았다.

그의 삶이 달라진 건 2013년 1월부터다.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던 그는 주거취약계층의 재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빅판’으로 불리는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빅이슈는 5000원인 잡지 한 권을 팔면 2500원을 판매원에게 준다. 임씨는 빅판에 지원할 때를 복기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홈리스 아닌 홈리스로 지내려고 했었지만 지금 나에겐 자존심, 창피함 등은 거창하게 들리는 꿈같은 말일 뿐이다. 생존이 우선이다.”

그런데 임씨는 ‘평범한’ 빅판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A4용지에 직접 쓴 글을 빅이슈에 끼워 넣었다. 독자를 향한 살뜰한 편지이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수필이었다. 글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홍대입구역 빅판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은 임씨가 자신이 팔던 빅이슈에 부록처럼 끼워 넣었던 수필들을 엮은 책이다. 잔잔하게 가슴을 흔드는 글이 차례로 등장한다. 처음 무료 급식소를 찾았을 때 엄청난 인파에 놀랐던 기억, 벽돌을 나르다 추락해 병원 신세를 졌던 일, 몰래 고시원 빈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 날들…. 이 책을 마주할 독자들은 임씨가 직접 그린 삽화도 만날 수 있다.

아마 임씨는 오늘도 빅판을 상징하는 빨간색 조끼를 입고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을 것이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추구하는 삶과 좌절하는 삶 사이에서 과거의 불행을 밑거름으로 삼지 못하고 망각해버리는 인생이 될까 두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나갈 생각입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