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소득주도성장 아닌 불로소득주도성장 중”

입력 2019-01-19 04:00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전강수 지음, 여문책, 304쪽, 1만7800원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국 부동산 정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업적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참여정부 시절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과 서민들이 느낀 박탈감을 떠올린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일 것이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은 낙제점을 받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문제라고 여기는 이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저자의 참여정부 예찬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시절 정부가 내놨던 부동산 대책은 “대한민국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한 뛰어난 것”이었다고 치켜세운다. 참여정부의 상징이었던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대해서도 호의적이다. 당시 치솟던 집값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의 집값 상승은 그 수준이 덜했다고 적었다. 불황에도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고,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해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고 강조한다. 급기야 이런 주장까지 내놓는다. “노무현정부 때의 종부세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2017년 강남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서울 전체를 집어삼킨 부동산 광풍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여기까지 들으면 저자의 정치적 성향을 넘겨짚으면서 이명박·박근혜정부에 각각 얼마나 혹독한 평가를 내릴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에 젖줄을 대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다시 호평을 늘어놓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정부가 헛발질만 반복하고 있다는 거다. 책에는 “노무현정부가 부동산 불패신화와 정면대결을 펼쳤다면 문재인정부는 단순한 시장관리에 그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저자는 8·2대책→11·29대책→9·13대책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부동산 해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현 정부의 슬로건은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불로소득주도성장’이라고 규정해놓았다. “지주와 재벌과 건물주가 기세등등하게 ‘불로소득성장 만세’를 외치는데도 문재인정부는 그들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는 진정한 소득주도성장은 실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을 내놓는 저자는 누구일까.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에는 어떤 내용이 추가로 담겨 있을까. 저자는 줄기차게 한국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해온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다. 그는 신작을 통해 한국이 어쩌다 부동산으로 거머쥐는 불로소득에 목을 매는 국가가 돼버렸는지 들려준다. 전 교수가 지고의 가치로 떠받들면서 끊임없이 등장시키는 단어는 ‘평등지권(平等地權)’. 평등지권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토지에 대해 갖는 평등한 권리”를 가리키는데, 해방 이후 한국은 한동안 평등지권이 자리매김했던 나라였다. 농지개혁이 단행되면서 지주의 수탈에 신음하던 많은 소작농은 자영농으로 거듭났고, 땅값이나 집값으로 대단한 잇속을 차리려고 달려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박정희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달이 났다.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강남 지역 개발은 지가 폭등의 끌차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부동산으로 거둬들이는 불로소득에 몰두했다. “한국사회는 1970년대부터 대략 10년을 주기로 부동산 투기 열풍을 겪으면서 지대추구 사회로 변질되고 말았다. 박정희는 한국 국민에게 처음으로 지대추구의 짜릿함을 맛보게 했다는 점에서 과오가 크다. 이런 면을 보지 않고 임기 중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추앙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 교수는 통념으로 자리 잡은 한국 부동산 역사의 온갖 ‘신화’들을 각개격파한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이승만정부의 농지개혁은 얼마나 정략적이었는지, 토지공개념은 얼마나 헌법 정신에 들어맞는 개념인지 자세하게 들려준다. 딱딱한 내용이지만 각종 데이터를 땔감으로 삼아 전하려는 메시지를 향해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한 작품이다.

이런 책의 핵심은 결국 저자가 말미에 던질 처방전에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전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게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의 고강도 내용이다. “모든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하자” “이렇게 걷힌 세수를 다시 국민들에게 나눠주자(이것은 기본소득 제도와 연계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와 부동산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부동산 백지신탁제와 부동산 소유상한제를 실시하자”….

전 교수 역시 이런 주장들이 쉽게 받아들여지긴 힘들 것이라는 점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은 이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관성적 믿음을 떨쳐버리는 일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는 문재인정부를 향해 간곡하게 당부한다. “문재인정부가 촛불정부의 소임인 사회경제개혁에 등한한 것이 재집권 전략 때문이라면 그것은 계산 착오다.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으로 노무현의 분투를 이어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재집권 전략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