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등장하면 안방극장은 ‘마법’으로 물든다. 작품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기분 좋은 혼란에 빠뜨렸던 ‘장르술사’(장르의 마술사) 송재정(46) 작가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에서도 그의 특출함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번엔 AR(증강현실) 게임을 극에 접목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간다. 드라마는 한국 최고의 투자회사 대표 유진우(현빈)가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AR 게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의문의 일들을 다뤘다.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송 작가를 만났다.
“원래 ‘문명’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더블유’가 끝나고 새 소재를 찾던 중에 한창 열풍이던 게임 ‘포켓몬고’를 해봤어요. 여의도광장에서 포켓몬을 잡아봤는데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드라마로 잘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순풍산부인과’(SBS·1998) ‘거침없이 하이킥’(MBC·2006) 등 인기 시트콤을 공동 집필했던 그는 드라마 작가로 길을 틀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가감 없이 펼쳐냈다.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상 tvN·2013) ‘더블유’(MBC·2016)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은 일면 판타지지만, 인간의 내면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생하기도 하다. 송 작가는 “리얼리즘적인 히어로물”이라고 설명했다.
“판타지에는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증강현실 오류를 마주했을 때 어떤 공포를 느끼고 해결해 나가는지가 중요한 거죠. 제 주인공들은 신화 속 오디세우스처럼 고난을 겪으며 영웅이 돼가는 인물들이에요. 하지만 활약보다 과정에 집중하죠. 후반에 늘어진다는 분들도 있으셨지만, 저는 진우의 얘기를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라고요.”
영감은 주로 책과 영화에서 얻는다.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 서적은 많이 보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인문학 서적을 포함해 가리지 않고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사실 유진우도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의 자서전을 보다가 갑자기 구미가 확 당겨서 착안하게 된 캐릭터예요. 영화는 리들리 스콧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규모감 있는 판타지 세계를 구축한 분들을 좋아해요.”
드라마의 성공에는 연출을 맡은 안길호 감독의 역할이 컸다. 그는 첫 회의 스페인 그라나다 광장신 등 송 작가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그림을 그대로 화면에 옮겼다. 송 작가는 전면에서 극을 이끈 배우 현빈과 박신혜에 대한 애정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연기를 보면서 감동했어요. 액션과 멜로를 둘 다 잘해야 했고, 신체 조건도 전사 못지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역할을 할 사람은 현빈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신혜씨의 멜로 연기도 깜짝 놀랐고요. 액션을 하지 않아 덜 돋보일 수 있지만 깊은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 앞으로 연기에서도 좋은 평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드라마는 오는 20일 종영을 앞두고 있다. 실종됐던 세주(찬열)는 돌아왔지만, 진우는 엠마(박신혜)에게 열쇠를 넘기고 사라졌다. 송 작가는 “엠마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마지막 관전 포인트를 대신했다.
“엠마의 중요한 기능이 남아있어요. 왜 박신혜씨가 엠마여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로맨스가 늦어진 것도 진우의 지긋지긋한 과거가 해결돼야 희주에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진우가 차형석(박훈)의 죽음을 비롯한 여러 마음의 빚을 갚아가는 과정을 잘 지켜봐 주세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포켓몬고 하다 AR 게임 드라마 기획했죠”
입력 2019-01-15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