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맺은 합의안에 대한 의회 표결을 하루 앞두고 ‘노딜(no deal) 브렉시트’와 ‘노(no) 브렉시트’의 기로에 섰다. 투표가 부결된 뒤 영국이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것 외에 제2 국민투표, 총리 불신임, 브렉시트 발효 시한 연기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영국 사회가 시계제로 상황에 빠졌다.
테리사 메이(사진) 영국 총리는 14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중부 스토크온트렌트에서 브렉시트 합의안 지지를 호소하는 마지막 연설에 나섰다. 메이 총리는 “의회는 노딜 브렉시트를 하느니 차라리 브렉시트 자체를 막으려 하고 있다”며 “정부와 의회에 브렉시트 연기 또는 취소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6년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이번 표결에 반영되지 않으면 영국 정치에 ‘재앙적 피해(catastrophic harm)’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승인투표는 15일 오후 7시(한국시간 16일 오전 4시)에 진행된다. 야당 의원들은 물론 집권 보수당 의원 중 100명 정도가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표는 부결될 확률이 크다. 이날 합의안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메이 총리는 오는 21일까지 ‘플랜B’를 제시해야 한다.
합의안 부결 이후 브렉시트는 무역·국경 이동 등의 사전 합의 없이 EU와 결별하는 ‘노딜’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영국 정부는 주요 부처 공무원 4000명에게 일상 업무 대신 노딜 브렉시트 준비에 주력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국방·법무·교육·국제개발 등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즉각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하원에선 지난 8일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정부의 과세 및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재정법 수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EU 탈퇴가 아예 취소되는 ‘노 브렉시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합의안 부결 뒤 제2 국민투표가 열리면 그때는 ‘브렉시트 반대’에 표를 던지는 국민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가디언은 “현재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재투표에 반대하고 있지만, 의회의 교착상태가 풀리지 않으면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제1 야당인 노동당은 메이 총리의 불신임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우리가 선택한 시점에 총리 불신임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BBC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원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된 뒤 14일 안에 새로운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의결되지 못하면 영국은 조기 총선에 돌입하게 된다. 영국 언론들은 합의한 표결 이후 24시간이 의회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자 EU가 브렉시트 발효 시한을 연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가디언에 따르면 EU는 조기 총선이나 제2 국민투표 등을 염두에 두고 브렉시트 시작 시점을 최소 7월까지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메이 총리가 합의안 부결 직후 EU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 정부도 브렉시트 표결을 앞두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 간 충분한 협의가 없는 상황에서 노딜 브렉시트가 닥치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수출·수입품에 적용되던 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노딜 브렉시트로 간다면 비상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챙겨야 하는 여러 조약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영 FTA를 빨리 발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아 이상헌 기자 minajo@kmib.co.kr
브렉시트 15일 운명의 날… 한치앞 안보이는 英 어디로
입력 2019-01-14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