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상태, 3~4.5m 거리, 두 개의 침…’ 지키기 어려운 테이저건 지침

입력 2019-01-15 04:05

서울 강동구 암사역 인근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난이 일자 경찰이 즉각 “지침에 따라 대응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공권력 집행을 옥죄고 있는 규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 13일 암사역 3번 출구 앞에서 친구 A군(18)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로 B군(19)을 체포했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피의자가 다가오자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피의자는 경찰이 쏜 테이저건을 피해 부근에 몰려 있던 시민에게 돌진하며 도망갔고, 해당 장면이 찍힌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경찰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이에 민갑룡 경찰청장은 14일 “동영상에는 경찰이 피의자를 진정시키고 상황에 맞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며 “당시 경찰은 지침에 따라 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지침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10조에는 총기 사용이 허가되는 경우가 정당방위, 긴급피난, 징역 3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수 있는 피의자가 저항·도주 시, 위험 물건 소지 범인을 체포할 때 등으로 나와 있다. 테이저건 사용 및 관리지침에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구두로 경고 후 사용해야 하며 가급적 상대방이 정지 상태에서 가슴 이하 하복부 등 중심의 근육 부위를 조준해야 한다. 적정 사거리는 3∼4.5m로 명시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칼을 든 피의자가 다가왔을 때 경찰은 테이저건을 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야 한다. ‘급박한 상황’에 대한 해석도 모호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방위의 경우가 무엇인지만 따져도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상황에 맞는 더욱 세세한 규정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이저건의 효용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 당시 경찰관은 테이저건을 발사했지만 B군에게 제대로 맞지 않았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테이저건은 두 개의 침이 상대방에 모두 꽂혀야 작동을 하는데 발사 전 타깃을 향하는 레이저 조준점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아 맞추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은 최근 개선된 ‘물리력행사기준’안을 완성했지만 논의단계에 머물러 있어 언제 현장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경찰의 안에는 총기 사용 시점을 ‘상대방이 엽총·칼·낫·쇠파이프 등을 들었을 때’로, 테이저건 사용 시점을 ‘경찰의 제지를 무시하고 주먹질과 발길질 등의 폭력을 행사해 상대방이나 경찰에게 부상을 입힐 경우’로 보다 확실하게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공권력을 강화해서 시민들의 안전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단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공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공론화를 수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B군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상해, 특수절도 혐의로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