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체육계 성범죄 근절, 이번에도 빈말 그쳐선 안돼

입력 2019-01-15 04:05
유도선수였던 신유용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교 1학년이던 2011년부터 4년 동안 당시 학교 유도부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3월 코치를 고소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해 외롭게 버텨왔는데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고백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체육계는 지도자와 선수 간 위계가 엄격하고 출전, 진학, 취업 등 선수의 미래를 지도자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학맥, 인맥 등 연줄로 얽혀 있어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알리기 쉽지 않은 곳이다. 젊은빙상인연대가 14일로 예고한 빙상계 성폭행 추가 폭로 기자회견을 연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피해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부랴부랴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체육계 폭력·성폭력에 대해 과거 여러 차례 ‘무관용 원칙’을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에 지난 5년간 접수된 폭력·성폭력 사건 113건 가운데 가해자가 영구제명이나 자격정지 5년 이상 등 중징계를 받은 비율은 16.8%에 불과했다. 절반가량인 54건(47.8%)은 경고·견책·근신 등 솜방망이 징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철저히 조사·수사하고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사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보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천이다. 과거처럼 이번에도 빈말에 그친다면 피해 선수들의 무기력감, 배신감만 키우게 될 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한체육회나 소속 경기단체가 맡고 있는 피해 조사 및 징계 심의 절차를 외부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이 주도하도록 바꿔야 한다. 불투명한 선수 선발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심석희 선수와 신유용씨의 용기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