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비핵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입력 2019-01-15 04:01
북한의 시간 끌기로 미국이 대북 비핵화 협상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선회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어떻게 미국 국민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국민의 안전”이라고 말했다. 대북 협상의 무게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로 이동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이 발언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제스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북한 비핵화 전망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국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도 한몫했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미 본토를 겨냥하는 ICBM 제거라도 전리품으로 챙기겠다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국 측의 잇따른 유화 제스처에도 고위급회담을 회피하며 시간 끌기를 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승리다.

북한이 ICBM 폐기 등 핵·미사일 전력을 동결하면 미국은 반대급부를 줘야 한다. 우선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 기준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최근 강하게 요구하는 게 이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들어줄 경우 북한 비핵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대북 제재도 풀어줘야 한다. 그렇지만 한번 제재를 완화하면 이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전문가들이 첫 단추를 제대로 꿰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게 이 때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인 소득 없이 김 위원장에게 큰 외교안보적 승리를 안겨줬다.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이런 식으로 가면 완전한 비핵화는커녕 결정적인 핵 무기·시설 감축도 얻어내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의 잘못도 크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단추를 제대로 꿰기 위해서 ‘북 핵 시설의 철저한 신고·검증’에 힘을 실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신고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커녕 입만 열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노래만 부르고 있다.

북한이 미국 제안을 악용해 비핵화 협상을 핵 군축 협상으로 변질시킬 수 있음은 기우가 아니다. 이미 9·19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의 ‘심기’에 어긋나는 발언조차 일절 못하고 있다. 제재 해제만 서두를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비핵화를 못하면 영구히 북한의 핵 인질이 된다는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