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서민(52) 단국대 의대 교수의 첫인상은 그의 글이 풍기는 분위기와 흡사했다. 점퍼 차림에 배낭을 멘 서 교수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더니 열없는 미소부터 지어 보였다.
“생각보다 키가 크시네요?”
“하하. 제가 요즘 들어 더 컸습니다.”
시작부터 이렇게 싱거운 농담을 던지다니. 알려졌다시피 그의 글은 유머러스하다. 서 교수의 이름 앞에 자주 붙는 수식어는 ‘반어법의 대가’.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그의 반어법 칼럼은 당대 현실을 비틀어 누구보다 뾰족하게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곤 한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비꼬는 글을 교수님처럼 잘 쓸 수 있는 건가요.”
“저 비꼬는 거 좋아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명예훼손으로) 감옥 가기 싫어서 반어법을 활용할 뿐이에요.”
서 교수를 만난 건 최근 그가 출간한 신간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생각정원). ‘서민적 글쓰기’(2015) ‘서민 독서’(2017) 같은 전작들과 달리 자신의 전공인 의학 분야를 다룬 교양서다. 한동안 사회성 짙은 글을 쓰던 서 교수가 별안간 의학사를 다룬 책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에서 의학사를 다룬 책을 내자고 제안하더군요. 처음엔 ‘내가 왜 그런 책을 써야 하나’라고 고민했죠. 일단 시중에 나온 의학사 관련 서적을 몽땅 사서 읽어봤어요. 그런데 괜찮은 책이 별로 없더군요. 지난해 7월쯤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원고를 재촉하는) 협박성 메일을 계속 보내니 초인적인 힘이 나오더라고요(웃음).”
책은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학사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차례로 짚어본 내용이다. 짐작하다시피 그 옛날 의학은 의학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지금 보면 황당한 치료법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문신으로, 사혈(瀉血)로, 엉터리 약초로 환자를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오랫동안 질병은 “신이 내린 징벌”로 간주됐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의학사를 다룬 다른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서 교수의 작법. 그는 진부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책에는 ‘외치’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신석기인인 외치는 돌도끼배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탁월한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빨리 걸으면 숨이 차는 병을 앓게 됐다. 외치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인류사의 명의들을 만나게 된다.
“의학사를 다룬 여타 책과 비슷한 스타일이라면 출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재밌게, 잘 쓰고 싶었어요.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죠. 그래서 출판사에 중간중간 원고를 보낼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오기 직전에 다시 읽어보니 기절할 정도로 재밌더군요(웃음).”
인터뷰하는 내내 서 교수는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곤 했다. 예컨대 필력의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나라는 인간은 깊이가 없어서 어려운 글은 못 쓴다. 쉽게 쓰다 보니 많은 분들이 좋게 봐 주시는 거 같다”고 했다. 이어 “서른 살까지 책을 안 읽었다. 누굴 웃기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았던 게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신간을 발표하면 보름 정도 쉰 뒤에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결국 남는 건 책밖에 없는 것 같다. ‘글발’이 올랐을 때 빨리빨리 책을 내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라면 서 교수는 오는 5월 세균과 바이러스의 세계를 다룬 책을, 6월에는 강아지 기르는 방법을 전해주는 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참고로 그는 강아지 여섯 마리를 키우는 애견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뒤늦게 그의 명함을 확인하니 명함 뒷장엔 귀여운 강아지들 사진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의학 책 망설였는데 기절할 정도로 재밌네요”
입력 2019-01-14 19:43 수정 2019-01-15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