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으로 촉발된 지식재산권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의 화웨이는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자사 직원을 해고하는 등 꼬리자르기에 나섰지만 ‘화웨이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유럽에서 퇴출 위기에 처했다. 미국은 화웨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인공위성 관련 정보의 탈취 시도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12일 CNN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왕웨이징 판매국장과 고용관계를 즉시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화웨이는 “왕웨이징이 회사의 국제적 평판에 해를 끼쳤다”며 해고 이유를 대면서 스파이 혐의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화웨이가 신속하게 왕웨이징을 해고한 것은 차세대 이동통신망인 5세대(5G) 구축 사업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화웨이 장비에 대한 안전 우려를 조기 차단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화웨이가 개인 차원의 잘못이라며 직원을 해고한 것은 스파이 행위를 자인하는 꼴이어서 ‘화웨이=중국 스파이’라는 인식을 자초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폴란드 당국은 지난 8일 왕웨이징과 함께 폴란드인 1명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왕웨이징은 바르샤바에서 화웨이의 중·북부 유럽 판매 총책임자로 일해 왔으며, 그전에는 폴란드 영사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폴란드인은 국가안보부(ABW) 요원 출신으로 현재 폴란드 통신사 ‘오렌지 폴스카’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달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데 이어 유럽에서도 스파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화웨이는 5G 구축 사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지만 스파이 사건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당장 폴란드 정부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화웨이 통신장비의 보안 우려에 대한 공동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요아힘 브루진스키 내무장관은 화웨이를 겨냥한 EU의 통일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이 동맹국들에 화웨이 제품 보이콧 동참을 촉구하자 호주 뉴질랜드 등이 5G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또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주요 통신 사업자들 역시 화웨이 배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해외정보국(MI6) 수장과 국방장관까지 나서 화웨이의 5G 장비에 대한 안보 우려를 제기했고, 체코 정부 역시 보안 우려를 이유로 자국 공무원들에게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를 지시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악조건에서도 사상 최대 매출 목표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화웨이 제품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면 큰 위기를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상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중국 자본 투자를 받은 미국 회사가 보잉사의 인공위성을 주문한 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미국 회사를 통해 인공위성을 사들여 관련 첨단기술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SEC는 로스앤젤레스 소재 스타트업인 글로벌 IP사에 서한을 보내 중국 국영 차이나 오리엔트 및 보잉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관해둘 것을 요구했다. 보잉은 논란이 빚어지자 해당 주문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IP’는 자금난을 겪던 중 2015년 7월 차이나 오리엔트 측과 접촉해 약 2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이후 공동창업자인 우마르 자베드는 2년 전 보잉사에 인공위성을 주문하면서 배후로 중국 정부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차이나 오리엔트가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장악하려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화웨이, 폴란드서 스파이짓… 유럽서도 퇴출 위기
입력 2019-01-1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