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에서 아킬레스건으로, ‘반도체 쇼크’에 한국 경제 흔들

입력 2019-01-14 04:01 수정 2019-01-14 17:36
‘반도체 쇼크’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가라앉는 경기를 지탱하던 버팀목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전방위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의 ‘끈’이 끊어지면서 경제가 급속도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1년 전 설비투자 조정으로 시작된 반도체 부진은 ‘생산 둔화’ ‘수출 급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은 27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이달 초에는 전년 대비 27.2%나 떨어졌다. 급기야 정부와 국책연구기관도 공개적인 경고에 나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지난해 12월 수출은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요 품목을 중심으로 감소했다. 수출 여건도 점차 악화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KDI가 매월 발표하는 경제 동향 보고서에 ‘수출 여건 악화’라는 표현을 쓰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KDI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선 “수출 증가세는 완만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었다. 한 달 새 경고 수위를 ‘완만’에서 ‘악화’로 높인 것이다.

정부도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발간한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 ‘반도체 업황 등 불확실성 지속’이라는 표현을 담았다. 한국 경제를 ‘경기 후퇴’로 몰아넣는 위험 요인에 반도체를 추가한 것인데, 무척 예외적인 일이다. 반도체는 지난 몇 년간 한국 경제의 탄탄한 성장엔진 노릇을 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한국 경제를 해칠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꺾이는 지표는 이런 극적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도체 쇼크’ 징후는 지난해 상반기 시작됐다. 반도체 기업의 설비투자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장(最長) 기간 감소세’를 보였었다. 원인은 반도체 기업의 투자 조정이었다. 대규모로 설비를 증설하던 반도체 기업들이 서서히 투자를 줄인 것이다.

투자 조정의 여파는 시차를 두고 생산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11월 반도체 출하지수(공장에서 물건이 팔려나가는 동향을 파악하는 지표)는 전월 대비 16.3% 줄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어 한국 경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액(전년 동월 대비)은 27개월 만에 줄었다.

내리막은 해를 넘겨 이어진다. 이달 초(1~10일) 한국의 전체 수출은 127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5% 감소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는 반도체가 문제였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2%나 줄었다.

반도체 쇼크는 경제의 3대 축인 ‘생산’ ‘투자’에 이어 ‘소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불황에 대한 위기감은 짙다. 전문가들은 올해 2.6~2.7% 성장(정부 목표치)조차 불투명하다고 본다. 경제연구기관들도 ‘경기 둔화’에 무게를 싣는다. KDI는 3개월 연속 ‘경기 둔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추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