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심판원 ‘통행세 로비’ 이젠 안 통한다

입력 2019-01-13 19:46

조세심판원의 ‘통행세 로비’ 관행 등 불합리한 조세 불복 절차가 개선된다. 따로 정해진 기한이 없어 통행세 로비의 빌미가 됐던 ‘행정실 내부검토’에 기한이 설정된다. 이미 심판관회의에서 결론이 난 사건의 종결처리를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루지 못하도록 행정실 권한을 제한한다는 취지다. 조세심판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자격요건도 대폭 높인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입법예고한 국세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조세심판원의 통행세 관행 근절 방안이 포함됐다. 조세심판원을 통한 조세불복절차는 기본적으로 6개의 심판관회의(각 심판관회의는 상임심판관 2명, 비상임심판관 2명으로 구성)에서 심리한다. 심판관회의에서 결론을 내리면 행정실 내부검토를 거쳐 조세심판원장이 사건을 종결할지, 합동회의에서 사안을 다시 심리할지를 결정한다.

문제는 마지막 절차라고 할 수 있는 행정실 내부검토가 차일피일 늦어질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심판관회의에서 납세자의 이의를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면 납세자는 잘못 부과된 세금을 즉각 돌려받아야 한다. 하지만 행정실 내부검토를 명목으로 사건 종결이 지연되면 납세자는 제때 세금을 환급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 몫이다. 특히 고액 사건일수록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납세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관(前官) 출신 회계사·세무사를 따로 선임해 행정실 내부검토를 빨리해 달라며 로비를 벌이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행세’라 부른다(국민일보 2018년 10월 12일자 1·6면 참고).

정부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행정실 내부검토 기한을 신설했다. 심판관회의 심리가 끝난 뒤 조세심판원장은 합동회의 심리 여부를 20일 이내에 결정토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13일 “합동회의 심리 여부 결정기한을 명문화하면서 사건처리 종결 지연으로 납세자가 불합리한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강행규정’은 아니다. 20일을 넘긴다 해도 처벌이 따르지 않는다.

또한 그동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의 자격요건이 강화된다. 현재 조세심판관 자격요건은 ‘판검사 5년 이상 재직,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 6년 이상 재직, 법률·회계·무역·재정·부동산평가학 부교수 이상 직에 재직한 자’로 규정돼 있다. 시행령 개정안은 재직기간 요건을 ‘통산 10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대학교수 경력의 경우 관련 분야를 법률·회계·세무학 등 조세 관련 분야로 좁혔다. 심판관회의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심판조사관의 자격요건도 까다롭게 했다. 현재 변호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 자격만 있으면 충족됐지만, 앞으로는 해당 직에 5년 이상 재직해야 한다.

‘깜깜이’ 지적을 받았던 국세청 산하 납세자보호위원회와 국세심사위원회의 민간위원 위촉 ‘문턱’도 높아진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 기관에 소속돼 있거나 해당 기관에서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등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려운 경우에는 민간위원 위촉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정부는 오는 29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친 뒤 차관·국무회의를 거쳐 다음 달 중에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할 방침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