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75.8%. ‘전관예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한 현직 변호사의 비율이다.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이 같은 조사 결과가 담긴 전관예우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법발전위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지난해 6월 20일부터 10월 1일까지 24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중 조사에 참여한 변호사는 438명이다. 현직 판·검사를 포함한 법조계 종사자의 절반 이상(55.1%)도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단순 전관을 넘어 학연·지연·근무연을 포함한 ‘연고주의’가 있다는 응답률은 58.4%로 더 높았다. 이 결과는 법조계에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적 갈등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도달하는 사법의 영역마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공의 룰’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충격 안긴 최유정·홍만표 ‘법조비리’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13일 “2016년 불거진 ‘정운호 법조 게이트’ 사건으로 전관예우의 폐해가 드러났다”며 “최유정·홍만표 변호사가 그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지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부장판사를 지낸 최 변호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에게서 100억원의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 등으로 2016년 5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15년 12월 구치소로 정 전 대표를 찾아가 “친분 있는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도록 하겠다.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나가게 해 줄 테니 50억원을 달라”고 요구해 돈을 받아냈다. 네이처리퍼블릭 상장을 앞둔 정 전 대표는 석방이 절실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50억원을 써서라도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2015년 6월 ‘인베스트 사기 사건’으로 재판받던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 대표에게도 “재판부에 청탁해 집행유예를 받아주겠다” “항소심에서는 보석을 받게 해 주겠다”며 50억원을 받아 챙겼다.
최 변호사는 연고와 전관 지위를 적극 활용했다. 그는 정운호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과 사법연수원 동기(27기)였다.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 사건 수임 뒤 이들과 빈번하게 연락했고 직접 찾아가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형량을 징역 2년6월로 낮춰 구형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로비가 통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최 변호사는 송 전 대표 변호를 맡고 나서는 법원에서 근무하는 등 가까웠던 사이인 항소심 재판장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재판장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하려 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고 했다. 수십억원대 ‘석방 장사’를 한 최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징역 5년6개월에 추징금 43억125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검사장 출신인 홍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5년 정 전 대표에게서 수임료 3억원을 받은 뒤 전관으로서의 영향력을 변론에 활용했다. 홍 변호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과 대검에서 함께 근무해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서 진행된 정 전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 진행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최 전 차장을 직접 찾아가 만났다. 밤 시간대,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서 친하게 지냈던 변호사 선·후배들의 연락을 현직에 있다고 마냥 거부하기는 힘들다”며 “나중에 내가 혜택을 입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편의를 봐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고 털어놨다.
여전히 공고한 ‘전관예우’의 성(城)
‘정운호 게이트’ 이후인 2017년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만사채통(萬事蔡通·모든 사건은 채동욱으로 통한다)’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해 8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함께 법무법인 서평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뒤 형사 사건 의뢰가 몰린다는 것이다. 채 전 총장과 인연이 깊은 윤석열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하는 등 ‘채동욱 사단’이 검찰 요직 곳곳에 포진하게 된 것과 무관치 않은 얘기였다. 서평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건을 맡았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채 전 총장과 윤 지검장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실제 전관들은 전관인 점을 내세워 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초유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선 법원 내 공고한 ‘그들만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하반기 이뤄진 사법발전위 조사 결과는 바뀌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 종사자 13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43.6%가 ‘비슷한 조건이라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고하겠다’고 답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해 특검 수사 단계에서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김경수 변호사를 선임했다.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확실시되자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유해용 변호사를 추가로 변호인단에 포함시켰다. 두 사람은 서초동에서 ‘초특급’ 전관 변호사로 통한다. 유 변호사는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휘말리면서 변호인단에서 사임했지만 김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유 변호사 본인에 대한 구속영장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 속에 기각됐다.
전관예우 관행은 법원·검찰의 최종 판단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대법원이 사법발전위의 제안을 받아 전관예우 근절방안 방침을 마련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도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사기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 ‘몰래 변론’ 사건을 조사 중이다.
판·검사의 인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법발전위 조사에서 변호사 75.8%가 전관예우 존재를 인식한 반면 판사는 23.2%, 검사는 42.9%만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한 변호사는 “전관들은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전관의 힘’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검사들은 내부에만 있다 보니 세간의 인식 수준을 공유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눈을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국회의원들과 논의해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출신뿐 아니라 고법부장판사,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개업 제한을 더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theMoon@kmib.co.kr
사라지지 않는 전관예우·연고주의, 사법 룰을 흔든다
입력 2019-01-14 04:03 수정 2019-01-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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