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2013년 유전자 검사로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아들자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선 유전자 분석을 병원이 아닌 민간 기업에서도 폭넓게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혈당, 피부 노화 등 12개 검사 항목에서만 민간 유전자 검사를 허용한다.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사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규제에 묶인 산업’은 한둘이 아니다. 수소충전소는 수소차산업에 필수 인프라이지만 현행법에선 상업지역 내 설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에선 상암동과 양재동 2곳에서만 운영된다.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들도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제로 빅데이터 사업에 제한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런 ‘족쇄’가 대대적으로 풀린다. 기업이 혁신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규제 샌드박스(sandbox)’ 법안이 오는 17일부터 시행된다. 도심 수소충전소 설치 허용이 1호 샌드박스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가 자유롭게 노는 모래밭(샌드박스)처럼 기업이 마음껏 활동하도록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2016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영국에선 기상이변 등으로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면 새 비행기표를 즉시 제공하는 자동 서비스 등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시행은 신기술, 신제품의 빠른 시장성 점검과 출시를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를 더 대담하게 혁파하자는 것”이라며 “규제가 없거나 모호하다면 허용하는 게 원칙이라는 생각으로 행정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규제 샌드박스 관련 5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현재 4개 법이 통과됐다. 이 가운데 정보통신융합법과 산업융합촉진법은 오는 17일부터 시행된다. 산업계는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분석 등 헬스케어, 수소충전소, 차량공유 등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분야가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기업 신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심의할 계획이다.
다만 카카오 ‘카풀(서비스)’처럼 혁신 산업과 기존 산업이 충돌하는 경우 조율에 여전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차량공유 서비스도 샌드박스 신청을 할 수 있다”면서도 “결국 전문가들과 협의해야 한다. 샌드박스를 한다고 100% 허용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한국형 ‘신산업 놀이터’ 생긴다… 규제 샌드박스 1호는 ‘도심 수소차 충전소’
입력 2019-01-10 19:32 수정 2019-01-10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