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로 檢출석하는 양승태, 대법원서 입장 발표하겠다니…

입력 2019-01-10 04:01

양승태(71) 전 대법원장 측이 9일 기자단에 11일 대법원 앞에서 대국민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알려왔다. 전직 대법원장으로 사상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오면서 검찰청이 아닌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통보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가급적이면 대법원 정문 안 로비 근처에서 입장을 밝히길 바란다고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문 밖에서라도 강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는 별도 협조 요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이나 주요 정·재계 인사들이 범죄 혐의를 받아 피의자가 돼 검찰에 출석할 때 별도의 입장을 준비해 언론 앞에 서는 일은 있어 왔다. 통상 그 장소는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길 검찰청사 문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서 간단히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도 검찰 출석 때 입장을 낼 것으로 예상됐고, 검찰도 이를 감안해 전직 대통령 소환에 준하는 보안 조치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선택은 예상을 깼다. 헌정사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로 지목된 피의자가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것을 놓고 법원 내에서부터 비판이 나왔다. 고등법원에 근무하는 A부장판사는 “전직 대법원장이라지만 피의자 신분인 상태에서 대법원 권위를 빌리려는 모양새라 부적절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현 대법원도 난감한 상황이다. 대법원 정문 내 기자회견은 명분이 없고, 정문 밖 기자회견은 시위자와의 충돌 등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내부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현 사법부에 부담만 지운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자신이 여전히 법원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다”면서 “법원과 검찰 갈등 구조로 비쳐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 역시 법원에 부담인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개 석상에 서는 건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후 처음이다. 그는 당시 “검찰 수사를 받을 의향이 있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합니까. 그때 가서 보시죠”라고 답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의 발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퇴임사에서 “(사법부에)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지금이라도 사법부 독립을 가장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성찰하길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일까.

구자창 사회부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