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데려오란 말 못들었는데…” 대혼란 겪은 다문화가정

입력 2019-01-10 04:00

서울 초등학교에서 예비소집이 진행된 지난 8일. 영등포구 대동초 정문 앞은 예비소집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학부모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툰 한국어로 “주민센터가 어디냐”고 물어본 뒤 서둘러 뛰어가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 학교는 지난해 신입생 10명 중 7~8명이 다문화 가정 학생이었다. 올해 신입생도 외국 국적의 비율이 높지만 이들은 취학통지서 발송 대상이 아니다. 이날 어수선함은 예비소집 공지를 안내받지 못한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이 제출해야 할 서류를 못 챙겨왔거나 자녀를 데려오지 못한 데서 빚어졌다.

아들의 입학 절차를 밟기 위해 대동초를 찾은 중국 동포 하모(32)씨는 “어린이집에서 학교로 가보라는 얘기만 듣고 왔는데 막상 와 보니 아이도 함께 와야 한다고 하고, 가져와야 할 서류도 많더라”며 “벌써부터 아이의 초등학교 생활이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달 중순까지 전국 초등학교에서 신입생 예비소집이 이뤄지지만 현장에서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원영이 사건’ 이후 교육당국은 미취학아동 소재 파악을 위해 예비소집일에 아동도 반드시 참석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취학통지서에 이런 내용이 정확히 기재돼 있지 않은데다 취학통지서조차 받지 못하는 다문화가정은 관련 공지사항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다문화가정 학부모는 혼자 무작정 학교를 찾았다가 “아이와 함께 오셔야 한다” “주민센터에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아 오시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높은 지역의 초등학교는 예비소집일 전후로 업무가 ‘마비’될 수준이다. 외국 국적의 학생은 예비소집일에 출입국사실증명서와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 등 서류 4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모두 발급받아 오는 학부모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림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미 지난달부터 학교로 전화 문의가 너무 많이 와서 다른 업무에 지장이 갈 지경”이라며 “중국어로 된 공지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놨지만 여전히 혼란이 많다”고 털어놨다.

다문화가정 학부모들은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주민센터에 직접 찾아가 물어보거나 동포 커뮤니티를 통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이다. 지모(34)씨는 “다행히 친구 아들이 이 학교 2학년이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며 “친구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구로구 영일초 예비소집에 참석한 박모(37)씨도 “어린이집 원장에게 물어봤지만 원장도 잘 모른다고 했다”며 “결국 직접 주민센터에 찾아가서 물어봤다”고 말했다.

한국인 학부모 사이에서도 혼란이 적지 않다. 취학통지서에는 예비소집에 참석할 때 통지서를 지참하라는 내용만 적혀있을 뿐 아동이 필수 참석 대상이라는 안내는 없다. 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취학통지자 7만7659명 중 9789명(12.60%)이 예비소집에 불참했다. 직장인 박모(33)씨는 “아이가 꼭 참석해야 한다는 얘기는 학교에서도 주민센터에서도 듣지 못했다”며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고 하기에 학교에 물어봤더니 그제야 ‘웬만하면 데려오는 게 낫다’고 말해 주더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