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징용 판결 ‘외교적 협의’ 요청… 韓 “면밀 검토 후 대응 방안 마련”

입력 2019-01-09 20:22 수정 2019-01-09 23:59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강제징용 피해자 측 변호인들이 지난해 12월 4일 우리나라 대법원의 배상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또다시 찾았지만, 이번에도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 변호인들은 지난 11월 12일에도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은 바 있다. NHK 화면 캡처
일본이 9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일 청구권협정의 분쟁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를 공식 요청하면서 한·일 관계가 시험대에 서게 됐다.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청한 일본 기업에 대한 압류신청의 효력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가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이다. 우리 외교 당국은 협의에 응할지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는 이날 “일본 측의 청구권협정상 양자 협의 요청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과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점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 측의 자극적인 발언과 관련해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며, 따라서 냉정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은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청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에 대한 압류절차가 본격 개시되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3조 1항엔 ‘본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양국 간 현재까지 이 조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우리 정부는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3조 1항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일본에 요청했지만 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본의 협의 요청에 응한다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는지에 대해서만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국이 외교적 협의에 나서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양국 입장 차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어차피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갈 생각인 것 같다”며 “외교적 협의 요청은 ICJ로 가기 위한 요식 절차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협의로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법을 찾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재위는 해결방안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포스코와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회사인 PNR이 이날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청한 회사 주식 압류신청 서류를 받으면서 압류명령 결정 효력이 발생했다. 법원은 피해자 2명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손해금에 해당하는 PNR 주식 8만1075주에 대한 압류신청을 승인했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신일철주금에 대한 자산 압류를 승인한 것과 관련해 이수훈 주일 대사를 이날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