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자영업 몰락 후폭풍… 서민 일자리 21만4000개 없어졌다

입력 2019-01-10 04:01
판매사원, 현장일꾼, 기술자 등 서민 일자리가 지난해 21만4000개 사라졌다. 총 취업자 수 증가폭이 2009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사이 ‘고용쇼크’는 서민부터 덮쳤다. 제조업·자영업 부진에 정부의 정책판단 실수가 얹어진 결과다. 자동차·조선 산업의 추락을 방어하지 못하면서 고용시장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제조업에선 하청업체 일자리까지 날아갔다. 자영업은 과당경쟁에다 최저임금 인상이 겹치면서 ‘종업원 근로시간 축소→해고’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했다.

통계청이 9일 발표한 ‘2018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9만7000명 느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이 한창이던 2009년(-8만7000명) 이후 가장 낮은 증가폭이다. 취업자 수를 끌어내린 건 제조업과 자영업이었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1년간 전년 대비 5만6000명이나 줄었다.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업의 취업자 수도 11만7000명 감소했다. 두 업종의 감소폭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치다.

제조업과 자영업의 ‘일자리 실종’은 곧바로 취약계층을 고용시장에서 밀어냈다. 제조업은 대기업 밑으로 수많은 협력업체가 포진하는 구조를 갖는다. 정점에 있는 대기업이 휘청이면 1~3차 협력업체까지 줄줄이 무너진다. 조선 산업 구조조정, 자동차 산업 경기 부진이 함께 힘을 쓰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영세 사업장까지 ‘도미노’처럼 타격을 받았다. 제조업과 연관된 기술 일자리인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의 취업자 수는 지난해 7만2000명 감소했다. 기능 일자리인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의 취업자 수도 3만8000명 줄었다.

제조업 위기는 경기에 민감한 단순노무직 일자리도 없앴다. 현장 일용직 등 단순노무종사자 일자리는 지난해 5만개가 사라졌다. 얼어붙은 경기는 청소원 등 다른 곳에 인력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의 일자리도 집어삼켰다. 관련 업종이 속한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의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6만3000명 줄었다. 기술과 기능 일자리, 단순노무 일자리, 하청업체 일자리의 감소폭은 모두 ‘사상 최대’라는 우울한 기록을 세웠다.

과당경쟁에 몸살을 앓는 자영업은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자 맥없이 주저앉았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줄폐업하면서 종업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판매종사자 일자리는 전년 대비 5만4000개 없어졌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선(先) 근로시간 조정, 후(後) 해고’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소매·숙박음식점업 근로자의 1주일 평균 취업시간은 45.3시간에 그쳤다. 전년 대비 2.6%나 줄었다. 사업장의 ‘사장’들이 인건비 부담을 덜려고 종업원 근로시간부터 줄인 것이다. 종업원 대신 사장이 직접 또는 가족이 일을 하면서 인건비를 아낀 셈이다. 그런데도 버티지 못하자 종업원 해고, 폐업의 수순을 밟았다.

여기에다 ‘일자리 한파’는 저학력 구직자들에게 더 매섭다. 지난해 고졸 학력의 남성 실업률은 4.3%로 2011년(4.3%) 이후 가장 높게 치솟았다. 고졸 남성의 실업률 증가는 ‘40대 일자리 쇼크’에 뿌리를 둔다. 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40대는 제조업과 자영업에 주로 근무하고 있다. 두 업종이 위기를 겪자 40대 취업자 수는 지난해 11만7000명이나 감소했다. 다른 연령대보다 감소폭이 컸다. 통계청은 40대의 약 40%가 고졸 학력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변두리에 위치한 노인들도 춥다. 60세 이상의 고령층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중졸 학력 구직자의 실업률은 3.3%로 2000년(3.5%)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부진’을 인구 변화로 설명하고 있지만, 인구 효과가 반영된 고용률은 지난해 60.7%로 전년보다 0.1% 포인트 감소했다. 고용률이 1년 사이 하락하기는 금융위기 후폭풍이 거세던 2009년(-1.0% 포인트)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경제활력 제고, 서비스산업 활성화, 취약계층 일자리 상환 개선에 주력해 올해 15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수출 둔화 등 대내외 불안요인이 많아 쉽지 않다고 본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