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멕시코 국경 안보 위기” 펠로시 “국민 인질로 공포 조장”

입력 2019-01-09 19:1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후 9시(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의 필요성에 대한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를 반박하는 연설을 했다.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양측의 연설을 같은 분량으로 생중계했다. AP뉴시스

국경장벽 예산 문제로 대치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의회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8일(현지시간) 각각 대국민 TV 연설을 통한 여론전에 나섰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아 19일째로 접어든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최장 기록(21일)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부터 10분간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멕시코 국경에서 인도적 위기는 물론 안보 위기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57억 달러 규모의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편성해 줄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내내 불법 이민자들의 살인, 강간, 폭행, 마약 등을 언급하며 국민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위기’ 표현을 여섯 차례나 썼다. 그는 “미국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불법 이민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매일 세관 및 국경순찰 대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는 수천명의 불법 이민자들과 대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미국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임금 상황이 열악해지고 치안과 안보 등에도 심각한 위험이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천명의 미국인이 불법 이민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또 수천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며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건설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겨냥해선 “정치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9일 백악관에서 다시 회동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10일 멕시코 국경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즉각 대응했다. 민주당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을 인질로 잡고, 장벽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 연설 직후 같은 분량으로 방송된 대국민 TV 연설에서 트럼프 책임론을 부각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그릇된 정보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면서 “미국 국민을 인질로 삼고 위기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언론은 이날 팩트체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불법 마약 유입, 하루 수천명이라는 불법 이민자 수, 민주당의 철강 장벽 건설 요구 등이 대부분 거짓과 과장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헤로인 때문에 매주 300명의 시민이 사망하며, 이들 헤로인의 90%는 남쪽 국경을 통해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에 대해 “헤로인의 90%가 멕시코에서 반입된 것은 맞지만 대부분 적법한 통관 절차를 거쳐 들어왔다”며 국경장벽 건설과 헤로인 반입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불법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한 것에 대해서도 이들의 범죄율이 미 본토 태생보다 낮게 나타난다고 했다.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민주당도 국경 보안 강화를 원하지만, 대통령의 방법에는 반대한다. 미국의 상징은 30m 장벽이 아니라 자유의 여신상이 돼야 한다”며 셧다운과 국경 안보 문제를 분리할 것을 촉구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중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의회 승인 없이 국경장벽 건설비용을 조달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그는 이를 언급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더 민주당과 협상한 뒤 합의가 안 되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으로 언론들은 예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