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2월 어느 날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육당을 위문 차 찾아갔다. ‘선생이 쓰신 3·1 독립선언서를 읽으면 어떤 기독교 사상가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다’라고 물었더니 육당은 대뜸 ‘내게서 기독교 사상을 빼면 아무것도 없지’ 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어릴 적부터 신구약 성서만 아니라 외전(外典)까지 탐독했다는 것, 인물로서는 레프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신앙인으로서는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그 교회 뒷방에는 이준 이회영 안창호 등 애국지사들이 자주 모였는데 당신은 거기서 물심부름을 하면서 자랐다는 것이었다.”
서울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였던 전택부(1915~2008) 선생이 2004년 8월 ‘성숙한 사회’에 기고한 글이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을 찾아가 선언문에 들어있는 기독교 정신에 관해 묻고 답을 듣는다. 전 선생은 “육당은 정의니 자유니 독립이니 하는 말들은 본래 조선에 없던 말인데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하면서 생겨난 새말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육당은 유불선(儒佛仙)을 넘나들었지만, 서울 연동교회에 교적을 남겼고 기독 지식인들과 사상적 교류가 깊었다. 그는 해방 후 친일 행위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기도 했으며 1957년 사망 직전 천주교로 개종해 명동성당에서 영결 미사가 치러졌다.
자유 평등 비폭력 평화는 3·1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담은 키워드다. 선언문을 현대어로 번역해 보면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한다. 공약 3장은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라면서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라고 강조한다. 또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라고 표현해 비폭력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는 9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이사야 40장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말씀에 나오는 ‘평등’ 개념을 비롯해 성경 전체가 자유 정의 비폭력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방 민족에게 끊임없이 수난 당한 유대 민족의 역사를 전하며 성경은 민족자결의 개념도 강조한다. 이 교수는 “특히 일제의 폭력적 국가권력에 맞서 종교적 관점에서 비폭력적 방식으로 저항한 점이 세계 열강의 지지를 끌어낸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최남선 “정의·자유·독립은 기독교 전해지며 생겨난 새말”
입력 2019-01-10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