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선거가 3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증시에서 ‘정치 테마주’가 들끓고 있다. 주력기업보다 더 많은 거래량을 기록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후진적 단기투자 문화, 계속된 증시 부진, 새로운 대권주자 급부상 등이 빚어낸 기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정치 테마주 주가는 대부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버블(거품)’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코스피시장 거래량 1~3위에 모두 정치 테마주가 이름을 올렸다. 거래량 1위는 ‘유시민 테마주’로 꼽히는 보해양조, 2위는 ‘이낙연 테마주’ 남선알미늄, 3위는 ‘황교안 테마주’ 한창제지였다. 정치 테마주라는 이유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주요 기업보다 더 많이 거래되는 특이한 흐름이 발생한 것이다. 보해양조 주가는 3개월간 133%, 남선알미늄은 142%, 한창제지는 192%나 올랐다. 코스피시장에서 최근 3개월간 100% 넘게 주가가 오른 종목은 정치테마주뿐이다.
정치 테마주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슬금슬금 바람을 탔다. 유력 인사들이 언론보도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15일 이사장직에 취임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만나 입당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치 테마주는 해당 정치인과 별다른 연관이 없다. 있다고 해도 기업의 실적과는 무관하다. 한창제지는 “황 전 총리와 최대주주가 대학 동문인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아무런 친분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남선알미늄도 “대표이사와 이 총리가 친형제인 건 맞지만 이 총리는 사업과 연관이 없다”고 공시했다. 보해양조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유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테마주에 대해 “다 사기다. 내가 선거에 나갈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돈 갖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폭탄 돌리기’에 가까운 투자를 벌인다.
전문가들은 정치 테마주 ‘묻지마 투자’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화라고 지적한다. 서울대 안동현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등에서도 정치인의 정책과 관련해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인과 친분관계가 있다고 오르는 현상은 한국에만 있다. 정경유착에 가격을 매기는 난센스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연구위원은 “차기 대권 유력주자들이 계속 바뀌면서 테마주들도 교체됐다. 여기에 국내 단기투자 문화와 증시 수익률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국의 경제 자체가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있고, 현재 주가가 올라갈 만한 동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투자자들이 실적이 아닌 ‘머니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마주는 누가 먼저 빠져나오느냐의 ‘치킨게임’이다. 일반 투자자가 뒤늦게 추격매수를 했다간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황 연구위원은 “테마주는 언제 떨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뛰어들면 대규모 손실을 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경고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대선 테마주’ 벌써 기승… 섣부른 투자 땐 큰 손실 우려
입력 2019-01-09 04:00